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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0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4. 응답하라 설악산 1982


머리가 얼마 정도 굵어진 상태에서의 수학여행은

역시 중학교 때와 많이 달랐다.


여관도 최신식이었고

밥도 개밥은 아니었다.


여학생들 단체버스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던 시절,

능력 있는 친구들은 잠시 주차하던 틈에

상대 버스에 가서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흔들바위는 겨우 봤는데,

울산바위는 공사 중이라고 중지.

좁은 등산로를 전국의 수많은 교복들이

몸을 거의 부딪히는 수준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이라이트는 밤이다.

술과 몰래 외출이 클리셰인 고등학생들의 야간 활동을

어떤 선생이 효과적으로 방어하느냐, 

창과 방패의 싸움이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그 당시엔 개근상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실의 대명사이자 범생이의 기준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결석도 해보고 가출도 해볼 것을...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매시간마다 선생들은 방에 들어와 인원점검을 했는데,

그 와중에도 우리 방 친구들은 커튼을 동아줄 삼아

밖에서 술을 추진해 왔다.


술도 여자도 관심은 있지만 행동력 없는 나 같은

친구들은 자는 친구 얼굴에 매직으로 낙서하는 장난으로 밤을 보냈다.


호연지기는 커녕 전날 숙취로 머리가 아픈 친구들과 

아직도 여학생 버스를 노리는 맹수 같은 친구들 틈 속에서

남학교 청춘들의 폭풍 같은 설악여행은 그렇게 지나갔다.


친구들의 부고 소식이 1년에 한 번쯤은 오는 중년의 시기.

스포츠머리 교련복의 가을여행이 흑백사진처럼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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