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5. 겁 없던 쩌리들의 지리산 탐험 1984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A는 재수생, B는 전문대생,
나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지리산을 가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그때 수도권에서는 밤차 타고 해운대 가거나
남쪽 어딘가 가방 메고 떠나는 여행이 유행이었다.
뭔가 근사할 것 같고 낭만을 즐기기 위해
호기롭게 우리는 지리산으로 떠났다.
남들 다 갖고 다니는 텐트나 배낭도
변변히 준비 못한 채
1인당 가방 두세 개씩을 짊어지고
화엄사에 도착했다.
5박 6일 지리산 탐험 중 가장 힘든 구간이
노고단까지의 산행이었다.
첫 코스이기도 했지만 경사도 심했고
여름날 더위가 가장 큰 적이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노고단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노고단에 올라 첫 밤을 고체연료와 코펠로
저녁을 만들어 먹고 곯아떨어졌다.
텐트 열린 틈 속으로 본 하늘에서는
별이 금방이라도 낡은 텐트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다음날부터 천왕봉을 향해 갈길을 재촉했는데
가장 큰 빌런이 B 친구였다.
이 녀석은 마라톤 아마추어 선수로
온 산행길을 무조건 뛰고 본다.
덕분에 A도 나도 어쩔 수 없이
군대 구보하듯 산길을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체력도
매우 매우 좋았던 시절이었다.
뱀사골에 다다랐을 때 B도 결국 지쳤는가
텐트를 치고 오래간만에 꿀잠을 잤다.
그렇게 천왕봉에 올랐는데, 가장 어이없는 것은
정상에 유치원생도 보였다.
힘들다고 탓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지리산은 온 산이 절경이었다.
그렇게 호연지기를 확인하고
칠선계곡으로 내려오는데 우리는
그때 그곳이 얼마나 험한 코스인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라톤 선수 외 2명은
내려올 때도 셋은 뛰어다녔는데
계곡에서 멱도 감았다.
남원 버스터미널에서 짜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고
우리는 기분 좋게 남도여행을 마쳤다.
백 년 묵은 고목과 새파란 청년들의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귀밑머리 하얗게 물들어 가는
두 친구들에게 더 늙기 전에
지리산을 다시 가보자고 하고 싶은데,
시간 내기가 모두 만만치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