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Aug 09.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5. 좌충우돌 간현 계곡 캠핑 1984


한참 무언가 발산하고 싶은 나이.

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거나 정확히 

스무 살 언저리

우리 청춘들은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안달이었다.


5명의 고교 동창이 도모한 곳은 

원주 치악산이었다.

청량리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달뜬 기분으로 떠났다.


기타도 메고 먹을 것도 잔뜩 

짊어진 우리들 앞에

기차에서 누군가가 

원주 간현 유원지가 그리 좋다,

어쩌고 정보를 주었다.

 

툭 치면 반응하고

귀가 얇았던 

우리들은 금세  

노선을 변경하기로 했다.


"야 더운데 산에 가봐야 뭐하냐?"

라는 핑계로.


내리는데 앞자리 아저씨가 

젊은 친구들이 

처음에 가고자 했으면 가야지 

중간에 내리냐고 핀잔을 주었다.


계곡과 적당한 남 녀 구성비, 

이곳은 파라다이스임을 직감했다.

역시 우리의 결정이 옳았음을 

복창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 되고 말았다.

울긋불긋 텐트촌에 우리 것만 

오래된 친구 큰형이 쓰던  

구식 삼각 텐트였다.

나머지 사람들의 최신 원형 텐트와

비교가 되어 볼 때마다 창피했다.


뭐 어때... 곧 힘을 내고 이곳에서의 

즐거운 섬머나이트를 상상했다.


작은 삼각 텐트에서 5명이 칼잠을 자도 좋은 시절이었다.


밥을 해 먹고 시커먼 남자 5명은 

작은 텐트에서 별 볼 일 없었다.

애꿎은 기타만 만지작 거리고 

카세트에 대학 가요제를 틀고 누웠다.


저녁이 되니 

캠프 파이어에 남녀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 

우리 텐트만 칙칙하고 

어두운 기운만 감돌았다.


한두 시간이 흘렀나.

도저히 안 되겠던지 

넉살 좋은 친구가 

어디서 여성 세 분을 텐트 

앞 공터로 모시고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쎄 보이는 누나들인데 

그들도 일행이 없어 

심심하던 차였나 보다.


둘러앉아 무슨 게임을 신나게 했는데 

간고 온 술이 금세 다 떨어졌다.

누나들은 술도 말술이었다.

벌칙을 물먹기 내기로 정했다.

신나고 즐겁고 화려한 밤이었다.


문제는 물 벌칙을 하도 하다 보니 

8명 모두 메슥거릴 지경까지 간 것이다.

피날레는 모두 화장실로 속을 부여잡고 

오바이트로 장식되고 말았다.

이벤트의 끝이 너무 허무했다.

 

지금 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누나들

우리가 동생 뻘인데도

어린 친구들과 잘 놀아준 것 같다.


그렇게 흥분되던  

하루가 지나고 

다시 아침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남자 5명의 아침이 밝아왔다. 


간현에서의 추억은 

그 첫날 하루가 기억의 전부이다.

그다음 날 또 다음날은 

별반 재미없이 보낸 것 같다.


내 청춘에 캠핑 처음은 

그렇게 짙은 각인을 남긴 채 끝났다.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