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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24.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16. 아득한 친구, 상주 1987


여행을 이야기할 때 

대개 상념 혹은 즐거운 추억이라지만

아득하고 혹은 

사무치는 그리움의 여행도 있다.

87년 가을 상주로의 1박 2일 여행이 

나에게는 그러하다.


내 친구는 우연히 87년 

하숙집에서 만났다.

거리는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우리는 도로 아니면 하숙방에서 주로 지냈다.


1년 내내 수업을 제대로

들은 기억이 별로 없던 시대.


하숙집에서 처음 만난 친구는 

역사학도였는데, 

집이 상주였고 과수원집 큰아들이었다.

진짜 상남자이자 경북 사투리도 정겨웠다.

덩치도 곰만큼 컸다.


친구와 헤어질 때쯤, 1992년 첫 회사 취직해서 정신없던 시절.


야리야리한 나와 덩치는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처음 낡은 목화아파트 할머니 집

하숙을 할 때는 술도 많이 마셨다.


할머니 집을 나와 2학기 때는

후문 앞 아줌마와 과년한 딸이 사는

다세대 주택 하숙으로 옮겼다.


무엇보다 학교가 가까웠지만

그러면 뭐하나,

87년은 데모로 시작해 데모로 끝나는 

교외 교내 민주화 시위 최절정의 시기였다. 


그건 그렇고

녀석과 나는 마치 만담 콤비처럼

친구가 과격하게 한마디 하면,

내가 농으로 받아칠 정도로 재밌게 지냈는데

친구는 워낙 두루두루 인기가 좋아 

여학생들이 우리 방에 자주 들렀다.


친구는 여학생들 고민을 상담해주는 역할을

자처했지만 정작 본인은 여자 친구가 없었다.

밤에 불 끄고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같은 과 첫사랑에 대해 

웃었다가 욕했다가...

첫사랑 맞구나 하고 내가 맞장구쳤다.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차던 10월이었나.

갑자기 자기 집 과수원을 가자고 했다.

같은 과 친구들과 예비역 선배 해서 5명이 떠났다.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 돌아

도착한 상주 과수원집은 언덕 위에 소담스러웠다. 


가족 모두 큰아들 친구들을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사과도 따고 

밤에 고스톱도 치고 놀았다.


친구가 늘 이야기하던 할머니는 

정말 인자하신 모습 그대로였다.


사과를, 소주를, 먹을 만큼 먹고

밤늦게까지 어울렸는데,

나는 다음날 아버지 제사로 일찍 떠나야 했다.

그게 내 친구 집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친구는 군대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전역한 이후, 

우리 고향 근처 건설회사에 취업했다.


또다시 뭉치고 20대 말을 1년 정도 같이 보냈다.


세월은 정신없이 흐르고

몇 년 후 

녀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선배는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자체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어이없지만 나는 충격 속에

친구의 기억을 고이 박제하고 끝났다.


흰구름 둥실 상주 하늘도

구수한 곰 같은 녀석의 사투리도

이제 희미한 기억 속에서만 가끔

꺼내 볼뿐이다. 


친구야, 잘 지내나?

우짜다 보이

내가 경상도 살게 됐다.

가끔 고속도로 타고 가다

상주 들러 점심 먹고 그럴 때마다

그 과수원 가고 싶고 그렇다.

잘 지내 쟈?

목화아파트 할머니는 만나 봤드나?

내가 너를 꼬셔서 

학교 근처로 옮긴 거라고

욕하셨다던데,

그거 아니라고 대신 설명 좀 해 주소.


하늘에서도 

건강해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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