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Aug 25.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17. 맛집 단골 순례기, 2021


어릴 적 배곯고 산 세대는 아니지만

그 당시엔 '식도락'이란 단어는 낯선 용어였다.


그러나 21세기 선진국에 들어선 지금은

맛집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배달 앱 별점에서부터

사람들은 이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민감한 혀를 만족시키기에 노력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식당에 관심이 많았다.

회사도 시원찮고

무언가 도전이 하고 싶었던 30대 초,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하던

그 많던 수십만 명 중에 한 명이었다.


거의 창업 정도의 책으로만 공부했는데,

몇 년 후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하지만 창업은 포기했다.

돈도 실력도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안 하길 잘했다.

했다면 바닥까지 들어먹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학시절,

한국식당 아르바이트를 몇 년 했다.

그때 처음 밑바닥부터 식당 시스템을 경험했다.


식당은 크게 맛과 종업원의 태도 두 가지가

승패를 결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목 좋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며 

그만큼 세도 비싸다.

 

찌개와 국 종류에 들어가는 다시 국물 두 가지

즉, 곰탕과 멸치육수로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

(물론 이 집만의 방식일 수도 있으나 

일본의 한국 요릿집은

많은 메뉴를 빨리 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비슷한 요리라면 사람들은 홀 매니저나 주인 얼굴 면을 보고 온다는 것,

단체는 의외로 매상을 확실하게 

올려준다는 것 등등.


그래서 서당개 처지가 되어

한국 와서 나름 맛과 식당 모습에 

개인적 평가를 하곤 했다.


제일 꼴불견을 꼽자면

1) 바빠 죽겠는데 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잔소리나 하는 집.

주인이 요리 자격증을 갖고 주방 일을 

마스터 한 집이라야 

맛도 운영도 보장된다.

2) 화장실을 밖으로 나가라 하거나 

남녀 분리가 안돼 불편한 집.

3) 처음엔 상냥하던 주인이 돈 벌더니 

표변하는 집이다.

뭐 나는 가지 않으면 그뿐이니 

그다음은 주인들이 알아서 할 일.


부산에서 15년 이상 살며 느낀 

단골집의 면면을 적어 본다.

온전히 개인 느낌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1. 대구탕,아구탕

부산사람들이 10년 전만 해도 해장은 대구탕

그리고 아구탕이었다.

점심 필수코스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즘은 일 년에 몇 번도 안 간다.


당시 자주 가는 금정구의 대구탕은 미어터졌다.

맛도 양도 푸짐했다.

이런 생선류 탕들은 결국 시원한 국물 맛이 좌우하는데

이 집은 모든 게 완벽했다.


5년 정도 단골 되고 난 어느 날,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만석이라 서서 기다리는데

주방 안 쪽에서 반찬 재활용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젓국을...

충격 그 자체.


이걸 신고할까 하다가 단골 의리도 있고 해서

다음날 가게에 전화했다.

주인은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부산 스타일이 이럴 때는 좋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이후 발길이 잘 안 가게 되었다.

결국 그 가게는 장소도 옮기고 

그저 그런 가게가 되어 버렸다.


추가:

부산사람들은 매운탕보다는 

지리 맑은 탕을 좋아하며

해장으로 복어탕도 좋아하지만

추어탕을 더 좋아한다.

해안가인데 민물 추어탕 많은 걸 보고 

처음에 많이 놀랐다.

암튼 부산은 해장은 추어탕 천국이다.


2. 횟집.

부산이야말로 생선회의 메카이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래서

많은 단골집이 있었다.


G 집은 역세권에 저렴하고 인기가 좋았다.

옆에 분점을 낼 정도였다.

부산 골목 스타일답게

회와 고구마 상추 깻잎만 나온다.

메인 디시 회가 싱싱하다.

6년간 지인 친구 가족을 데리고 많이도 갔다.

단골은 튼튼한 기본소득인 것이다.


주인은 새침해서 단골이라도 아는 척을 잘 안 했다.

뭐 손님이 많으니,

가성비에 맛만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발길을 끊은 것은 어느 날

가족을 데리고 갔는데 평소보다 비싸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발길을 끊었다.

그때 느낀 것은 손님들은 맛이 변해 

절연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맛 이외의 문제들이 더 크게 

비위를 상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늘 나는 자영업자들에게

손님 핑계 대지 말라고 한다.

많은 가게의 잘못은 주인의 탓이 더 크다.


그래서 옮긴 집이 H집.

회는 칼 맛인데 칼잡이가 솜씨도 좋고 친절했다.

밑반찬도 충실했는데,

5년 정도 단골이었다.

부산은 횟감이 풍부해 가까운 대형마트에서 사다 먹어도 맛이 괜찮다. 이 횟집은 집 앞 도매상 회의 저렴한 횟감.


여기를 끊은 것은 역시 특정 사건 때문.

횟감 전복 등등 후배가 낚시 잡아와서 맡기면

회값 내고 먹고 그랬다.

부산의 골목식당들이 거의 그렇다.


며칠 전 직접 잡은 전복 튼실한 걸 맡겼는데,

먹다 보니 이게 아닌 거다.

작고 볼품없는 걸 쓸어주었다.


혹시나 모르고 주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항의할 때 주인의 얼굴은 그게 아닌듯했다.

단골을 하루아침에 쫒는 것은 사장과 종업원들의

얄팍한 속셈 때문이다.




나중에 돼지국밥 추어탕 집도 써 보겠다.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