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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26.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18. 사원여행, 1996


경기도 일간지에 취업한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부천에서 지역신문 취재기자를 그만두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회사에서도

노조 비스무리한

조직 만들다 해고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청춘은 해고, 복직 뭐

이런 것들 투성이었다;;;)


시사만화 화백으로 픽업되어

대개 빵모자 쓴 어르신 화백님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접도 잘 받았다.


동년 배기 편집부 친구들도 좀 있었는데,

기자들은 늘 술과 일 투성이었다.

낮술에 스트레스에 기자는 솔직히

명이 짧은 직업 같았다.


메이저 중앙일간지가 전국을 헤집고

비리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지만

나름 지방일간지 구성원들은 열심히 살았다.

(솔직히 내가 봐도 경기도 내 10개 일간지는

너무했다.)


회장이 바뀌고 사원여행을 갔다.

어르신들 많으니 당연히 등산이 메인 코스였다.

김건모의 핑계라는 노래가 히트할 때인데

카세트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라

그 노래가 등산길에 흘러나온 것 같다.


여직원들과 농도 하며 산을 오르고

사원여행답게 거창한 식당에서 고기도 먹고

그렇게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동료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98년, IMF 해고 칼바람에

월급도 밀리고 결국 몇몇이 노조를 만들었다.


만들기 전날 공사 중 건물에서 비밀회동을 했다.

나는 솔직히 고백했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미 사표를 내려고 했다.

유학 갈 거다~"했지만

후배들은 서명만 해달라고

위원장 안 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데 9명이 노조 신고를 하자마자

나를 괴수로 만들어 해고가

하룻만에 전격적으로 처리되어

영광스럽게도 중앙일간지에

<000 화백 외 8명 노조 설립으로 해고>,

이렇게 기사가 떴다.


사측은 우리를 잘못 건드렸다.

이미 대학에서 쌈닭기질을 키운 우리에게

해고라니...

암튼 나도 사표를 미루고 같이 거리에서

대학 때 불렀던 운동가를 불렀다.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로 배후 조종자일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의 고위간부들은 나를 회유했고

어제까지 잘 지내던 비노조원 기자 녀석들은

배고픈 우리 앞에서 갈비나 먹으러 가자며

사측 편을 들었다.


어디서나 문제가 터지면 비인간성은

확연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3개월을 지난하게 싸우고

나는 유학을 갔고

후배들은 열심히 싸웠다고 들었다.


이제 그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편집부 친구들은 치킨집으로

사업, 장사, 프리랜서, 또 다른 곳 기자로

아직 그 동네 산다고 건너서 소식을 듣고 있다.

정년이 멀지 않았구나...


암튼 유일무이 단 한 번의 사원여행은

그 회사 추억만큼이나 흐릿한 채로

남은 메모리가 별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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