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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Sep 1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3. 내 영혼의 동반자, 마징가 제트, 1975~1976


내가 만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꼭 마징가 때문만은 아닐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첫사랑 가슴 시린 상대는

초합금 마징가 Z이다.


70년대 중반 시골에는 TV가 귀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닫는

늘 채널 돌리는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가

벤찌로 돌려야 하는

그 '테레비'는 동네에 한 두 대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패철 풍수인테리어 풍수소품 기모아 쇼핑몰 gimoa.kr


1972년 마징가가 일본의 소년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한국 문화방송에 안착한 것은

1975년 8월이었다.


티브이가 없어 남의 집에 구경 다니는

나 같은 아이들은

정확하게 요일, 시간대를 기억해야

원하는 방송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반인가

마징가 방영하는 날일 텐데,

티브이 집주인 큰아들 놈은

앞마당에서 애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다.


그 많은 까까머리 초딩들에게

테레비 척척박사 내가 한마디 하면

장내는 정리된다.


"야!! 마징가 할 시간이얏!!!"

우르르~ 안방에 치고 들어간다.



"쨔잔자잔짠! 기운 센 천하장사~!!"

주제가가 울리고

흑백 테레비에서

초합금 팔과 다리에 거칠게 목탄으로 질감을 더한

로보트가 수영장이 반으로 갈라지며

프로레슬링 스타 여건부처럼

쑤욱~ 솟아오르면

꼬마 사내들의

아드레날린은 최고조에 달한다.


백 그라운드 저게 후지산인지

주제가가 가사만 바꾼 건지

메이드 인 저팬인지

그때는 몰랐다.

알았다 해도 재밌으니 용서했을 성싶다.


우리에게는 헬 박사와 아수라백작

기계수를 쳐부수는 정의의 사도와

그의 강력한 무기

로켓트 펀치만이 중요하다.



그 짧은 6개월 동안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


친구들이 집에 돌아가도

주인집이 일찍 밥을 먹고 있어도

굳건하게 마징가를 사수했다.

부끄럼 많이 타던 내가 알고 보니

일본 아니메 오리지널 오타쿠 마니아였어!


586세대들이

90년대 울트라 재팬이 부르는 마징가를 듣고

마징가가 일본 것이고

태권브이가 마징가 아류라는 사실에

충격을 먹고...

또 그렇게 한참 세월이 가도 마징가는 남았다.


2019년인가.

기타큐슈에 갔는데

3D 마징가가 개봉한단다.


45년 만에 해후에 두근두근 잠도 설쳤지만

결국 비행기 시간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일본 친구가 안보길 잘했다고 위로했다.


그래, 맞다.

에반게리온도 옛날 옛적인데...


쇠돌이, 아프로디테, 김박사와 같은 인물들과

광자력 빔, 브레스트 파이어, 아이언 커터 무기들까지

아직도 들으면 설렌다.

 

내가 이제껏 만화라는 것을

온전하게 꽉 쥐고 살았던

원천이자 샘물같다.


변태, 또라이로 낙인 찍히고

저질만화가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기꺼이 마징가 원안을 만들어준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 아저씨에게

당대 초딩들을 대신해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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