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Sep 15.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2. 시간을 지배하는 자, 1985~1992


길눈 어두운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길눈이 어둡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비례하지는 않으니 재미있는 것일 터.


지금부터 하는 에피소드를 

참으로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1) 연천에서 인천까지 

용인에서 파주까지 먼 거리를 

군대 첫 휴가 친구를 배웅했다. 

우리 동향 친구 중에서 가장 먼저 군대 간 

그 친구는 적응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GOP 전방에서 얼마나 힘들면 

탈영하고 싶다고도 했다.

(넘어가면 북한이다, 친구야!;;;)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내가 해줄 거라고는 

같이 복귀 길동무가 되어 주는 것.

큰아들 군대생활에 노심초사하던 

친구 어머님도 나에게 고마워하셨다.


세 시간 남짓 걸려 

파주군 적성면에 닿았다. 

삼겹살을 먹었나, 암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빠이빠이 부대 정문으로 가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젠장!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저 부대로 배치 받았다. ㅠㅠ

탈영생각은 모르겠고 암튼 친구 말대로

개고생이었다...)



이제 서울 가서 전철 갈아타고 

구로역 환승- 수원역 종점-시외 좌석버스

-용인 시내-집까지 가야한다. 


아. 긴장이 풀어져서였을까?

이런.. 처음부터 버스를 거꾸로 타고 

반대방향 연천으로 가고 있었다.

아저씨 스톱 스톱!!!! 

이런 말도 부끄러워 못하고

중간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시 적성면 버스 터미널로 가서 

서울 불광동인가 도착해 전철 탔다. 


피곤해 잠시 잤나 보다.

잠시는 무슨...

내리실 곳은 주안역입니다??? 

인천?!

젠장. 멀리도 와 버렸다. 

바보 같은 놈. 

구로역에서 수원행으로 갈아탔어야 했다!!

 

다시 구로가 가서 수원행으로 갈아타고 

종점 수원역에 닿으니 밤 10시 반. 

용인행 버스 막차는 10시 40분.


집에 왔더니 새벽 1시. 

어디 말도 못 하고 혼자 막 웃었다. 

허허허허....미친것 같다, 나는.


2) 특종을 위하여

취재기자는 발로 뛰어야 한다.

뭐 어차피 차도 없으니 버스가 내 발이다.

부천 첫 취재기자 시절 온 골목을 발로 다녔는데

길눈 어두워봐야 골목은 거기서 거기니

오히려 걷는 재미가 있었다.


어쨌든 어느 날 취채 차 

부천 외곽 갔다가

시내버스를 반대로 잘못 탔다.

일상다반사.


하필 종점은 김포공항 앞 대장동 허허벌판이다.

논 밭 밖에 없다.


에이 또 이 멍청한 놈 하고 자책하는데,

어? 개울에 저건...!!!


국립생물자원관 홈페이지

난 처음에 황새로 봤다.

천연기념물!


내 가슴은 뛰고 있었고

바로 신문사에 전화했다.


한참 뒤 사진기자 선배가 

담배를 피우며 오더니

"야 저거 황새 맞음?"

"어.. 그게..."

왜가리였다.


왜가리 건 말건 대도시에 이건 적어도 특종감이다.

부천 공장지대 대도시 어디에서 

백로 왜가리를 볼 것인가?

어리바리 시절, 1990년대 중반 즈음

다음 주 1면 톱에 사진과 내 기사가 실렸다.

서울 라디오에서도 취재가 오고 난리였다.


어쨌든 길눈 어둡고 어리바리 수습기자는 한 건 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