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Sep 23.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8. 리시안사스 그녀를 찾아서, 2012-(1)


모성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크나 큰 슬픔이지만 

중년의 사내들에게도

엄마, 어머니라는 단어는

눈물샘이다. 


2012년 어이없게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근 일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내 멘토이자 지지대였던 어머니가 없는

고향도 이제는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병을 자가 치료하고자 

내가 시도한 것이

어머니의 일대기를 취재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기자 생활 경험으로 탐문은 자신 있었고

글쓰기는 때때로 치유가 된다는 믿음으로. 


이 글은 당시 일 년간 전국을 돌며 

친척을 만나고 탐문하던 기록의 일부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 1942

그녀가 태어난 곳은 일제 강점기 경기도 광주. 

태어난 지역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위례 신도시 공사로

그녀의 원적지는

온 들과 산이 파헤쳐진 상태였다.



대신 그녀의 언니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집안은 성실한 부모님들 덕에

배는 안 곯고 살았어.

네 엄마는 똑똑했는데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었지."


1950년대 그녀의 초등학교 소풍 사진


그러나 대부분의 당시 집안이 그러하듯 

막내딸의 학업은 소학교 졸업으로 끝났다. 


광주 동막골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농사일을 돕고 

서울에서 오빠 장사를 도우며

처녀로 성장한 그녀는 

어느 날 중매로 인근 동리에 사는 남자를 만난다.


시골 새댁이 되다, 1962

당시 큰 시아주버니 집에 신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안 모임 날. 


조카이자 내게는 사촌 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섯 살인가... 

어른들 모임이라 못 들어가고 밖에서 들었어. 

너의 엄마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불렀고 

작은 삼촌은 엽전 열닷냥을 부르더라.”


새색시는 큰 아주버니가 마련한 

논과 밭이 있는 

읍내에서 떨어진 시골에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첫째 딸을 낳고 2년 터울로 큰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사실문제가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큰아들과는 

소울메이트 이상의 대화를 많이 하는 사이였는데,

몇 가지 비밀을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남편이 병을 숨기고 결혼을 한 것이다.

아마도 지금 추론해 보니  

아버지는 어릴 적 충격으로 

심리적 큰 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지극정성으로 

아버지의 병은 나았다고 하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친척들도 

지나간 옛이야기로 치부하는 듯했다.


꿈 많던 젊은 새댁의 마음고생이 전해지는 듯하다.


남편은 목수, 페인트 공, 농사일 등 

손재주는 많았으나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두주불사와 불같은 성격으로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어릴 적 내 기억으로는 면 대항 씨름대회 나가서 

상을 받아 오고 나서 

다음날 사고를 쳐서 배로 되갚은 사건 같은 게 기억난다.

 

대개의 한국형 어머니들처럼 그런 집안을 

건사하며 사 남매를 키웠다.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마을 입구 초가집은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었다. 

꽃을 너무 좋아해 직업이 된 큰 딸 덕에 그녀가 좋아하게 된 리시안사스. 그녀가 심고 떠난 꽃이 주인공이 떠난 49일째 앞마당에 선연하게 피어있다.

울타리엔 넝쿨장미 사발꽃 앵두나무 

뽕나무 돼지감자가 숨을 쉬었고 

황소울음소리가 정겨운 살림집이었다.

 

그리고 6학년 때, 

언덕 위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들어선 공장 때문에 셋방도 주고 평화로웠으되 

살림은 나아지지 않아 

어머니는 동구 밖 봉제공장에 미싱사로 취업하셨다. 


농사일과 노동자, 가장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이른바 슈퍼우먼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