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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Sep 24.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9. 리시안사스 그녀를 찾아서, 2012-(2)


과부가 되다, 1985

술 좋아하고 사람 사귀기 좋아하던 남편은

논에서 일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창졸간에 남편이 떠난 집에

사 남매와 밭, 논 얼마가 남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았다.

착한 큰딸과 공장에서 벌어

나머지 학생 셋을 건사하는 한편

친가 본가 생일, 제사를 모두 챙겼다.

그녀는 꼼꼼하고 세심했다.


몸을 바삐 움직일수록

심장병 우울증 화병

그런 것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병은 날로 심해졌는데,

어느 날 심리적 문제를 간파한 의사가

종교에 귀의해 보면 어떻겠냐고 건의했다.

그녀의 친가가 대부분 기독교도였으므로

비로소 그녀는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


종교 덕분에 다소 몸도 안정되었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성실했다.

교인들에게 농사지은 것들을 나누어 주고

새벽, 철야기도에도 빠지지 않았다.

늦게 불붙은 신심은 넘쳐났으며,

누구를 데려다 밥 먹이는 것도 여전했다.


90년대 말, 갑자기 큰아들은 IMF에 해고되더니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처자식을 두고.


기꺼이 그녀는 응원해 주었다.

스무 살 자신의 품을 떠나 대학,

군대, 외국으로 떠도는

큰아들은 그래서 더더욱

애틋함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권사님과 자식들,2010

자식들이 이제 장성하여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는 그녀에게

미완의 숙제가 있었다.


바로 남편이 남기고 간 200평의 밭과 집 터,

그리고 1200평의 논이었다.


농가주택이 있던 논에서 바라본 그녀의 교회

80년대 말 믿었던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논 한 귀퉁이를 잘라냈을 때부터

그녀는 땅 노이로제에 걸리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길을 낸다고 땅 일부를 빌려도

서울 사람들이 측량한다고 온 것 뿐인데

그녀는 노심초사 안절부절했다.

땅은 그녀의 목숨줄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멘토 멘티관계였고 영원한 소울메이트였다.

그녀 떠나다, 2012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주들

모든 가족이 그녀의 칠순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그녀는 가장 행복해했다.


천상 불효자 큰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늘 곁에 없었고

효녀 큰 딸 작은 딸이

인근에서 늘 친구처럼 곁을 지켜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그녀는

파란만장한 일흔두 살의 삶을 마감하고

남편 곁으로 떠났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원에서

늘 자신의 자랑이자

소울메이트 큰아들에게

이런저런 짜증을 냈다.

아들은 그때 비로소 한 명의 여자를 보았다.

이번 추석에 큰 딸이 묘소에 헌정한 리시안사스

늘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했던

그녀가 비록 아픈 몸과 마음 때문에

짜증을 냈을지라도

아들은 그때서야 엄마도

한 명의 보통사람임을 확인했다.


하늘에서는 고단한 노동에서 해방되시기를,

불효자 큰아들 그만 걱정하시기를,

아내 사랑만큼은 넘쳤던 

그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안녕, 나의 꽃보다 그녀, 엄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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