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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Sep 2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40. 후지산 정상에서, 2000


유학 시절 오사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이른바 미나미란 곳인데

오사카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 중에 한 곳이다.

유흥가가 많으니 한국 음식점도 많았다.


내가 일했던 식당은

재일 한국인이 운영했는데

그는 최민수를 닮은 열혈 미용사였다.


식당은 주방장과 보조주방원, 

서빙은 나와 교포 분이 같이 했다.

나는 주로 배달을 많이 했는데

알루미늄 배달통을 일본에서 처음 만져봤다.


밤새 일하고 나면 

다음날 일행 모두 

(보조주방과 서빙분은 가족관계였다)

그 교포분 집에서 자고

오전에 일본 전통 목욕탕 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과였다.


8월이 되자

사장이 갑자기 후지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중에 보니 나름 의미를 둔 것 같은데,

우리야 멀리 여행 가본 적이 없으니 

좋다고 따라나섰다.


미용사 한 명 더해 모두 여섯 명 정도가 

사장 차를 타고 떠났다.

나도 운전을 할 수 있으니

교대로 하고 6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일본 고속도로는 산이 많아서

꾸불꾸불한 게 인상적이었고

휴게소는 우리나라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밤에는 귀신이 나올 것처럼 조용해

섬찟한 기억도 있다.)


후지산에 도착하니 점심때.

우리는 무더위를 피해 오후에 올라

휴게소에서 자고 

다음날 내려오는 일정을 택했다.


후지산은 5부 능선 아래로만 수목이 있고

상층부는 모두 화산재뿐이다.

그곳에 지그재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따로 뭐 등산 재미는 없다.

8월 땡볕이 등에서 부서진다.


각 부 능선마다 휴게소가 있고

거기서 한숨 쉬고 간다.

이미지 출처: 나무 위키

저녁이 되고

구름이 발아래 깔리고

휘영청 달이 뜨니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것이 후지산만의 아름다움인가.

8부 능선 가니 한여름에도 얼음계곡이 있다.


9부쯤 휴게소에서 4시간 정도 잠을 자고

새벽에 올라가기로 했다.

이미 고산증에 퍼져 버린 사람도 생겼다.

숙소는 좁고 축축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4시 정상 등반길에 나섰다.

누가 해발 3000미터 이상 아니랄까 봐

정상 부근은 일기가 불순해

비 오고 구름이 바삐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드디어 정상.

신기한 것은 정상에 

우동집과 우체국이 있다.

일본인들 답다.


우체국에서는 정상 스탬프가 찍힌 엽서를 

자신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우동 한 그릇.


사장이 정상에서 소원을 빌자고 한다.

무얼 빌었냐고 했더니

장차 1조 원대 자산가가 되게 해달라고 했단다.


굳이 후지산에 오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CEO도

사원들 데리고 태백산이며 높은 산 가던데

경영자들은 늘 불안한 환경에

그런 자기 주문에 많이 기대는 모양이다.


살갑던 교포 아주머니는 

혼자 그 오래된 이층 집에서 잘 살고 계실까.

그 사장은 1조 원 목표에 얼마큼 도달했을까.

야끼니꾸 집 그 사람들과

밤거리 번잡한 거리가 가끔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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