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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Sep 22.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7. 대운동회, 1977


시골도 도시도 아닌 

70년대 읍내 국민학교 운동회. 

온 동네가 출동한다. 


아침부터 청군 백군 나누어 응원하다 보면 

아침부터 고학년 동네 형이 잡아 놓은 

학교 구석자리에 동네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깐다. 


어차피 이 학교는 동네 사람 모두가 동창인

읍내 유일의 학교라서 더더욱 모두의 축제이다. 


당시 목청 껏 불렀던 응원가에 

2,400 건아(健兒)라고 했으니 

학교는 콩나물시루라서 

운동장도 교정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을볕 따가운 햇살 아래 고생하며 연습한

곤봉, 체조 같은 매스게임이 끝난다. 


저학년 친구들이 

오재미로 박 터뜨리기를 하고 나면 

아마도 점심시간이었을 터. 


동리 엄마들은 찐 밤, 김밥. 

과일 등등 진수성찬을 차려 놓는다. 

100년이 넘은 학교는 학생 수도 1/3로 줄고 정문 위치도 바뀌었다. 이미지 출처:카카오 맵


정문 입구 천막에는 어른들이 학교 기성회에 

십시일반 후원했다는

종이 이름표가 나붙고 

정문 밖에는 이 세상 장사치들은 다 모였는지 

코흘리개들 대상 대목 장이 섰다. 

페스티벌이 따로 없다. 


그날 아버지는 묵묵히 흰 우유를 하나 사주셨다. 

소화가 안돼 그 뒤로도 우유는 못 먹었으되

그날 고소한 우유맛은 아직도 기억한다. 


오후엔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개인 달리기 시합이 있다. 

늘 꼴찌를 도맡던 나는 

모두가 공책 연필 부상품을 기대하며 

이 악물고 달리는 레이스가 싫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 스포츠는 젬병이었다. 


수십 년 후 딸아이 운동회 때 

나를 제쳤던 또래들이 배 나오고 

숨이 차서 뒤로 처져서

덕분에 학부형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달리기에서 처음 상을 탔다.  

 

암튼 운동회가 끝나고 

동네 친구들은 개선장군처럼 

무리를 지어 집에 가는데, 

그날은 눈여겨봤던 장난감이며 

딱지 구슬도 살 수 있는 날이라서 기뻤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농사꾼 부모 손에 이끌려 

콩밭을 매거나 논두렁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골 소년소녀들이 오래간만에 웃고 떠들던 

10월의 신나는 축제였다. 


우리를 살뜰하게 돌보던 

여선생님은 칠팔십 대 어르신이 되었을 것이고

정문 앞 다리 위 번데기 아저씨는 

살아계시면 백 살은 되셨을 것이다.


시간은 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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