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Oct 06.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48. 당번 잔혹사, 1979


읍내 사립 남자 중고교는

같은 재단이었다.

인문계 남자 중고교는

오로지 이 곳 하나였으므로

우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생들은 전직들이 화려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직업에서 실패한 인생들 같았다.


당번이라 함은 일찍 학교 가서

물 주전자, 청소 뭐 그런

2인 1조 순번제인데

크게 힘들 건 없었다.

1) 태권동자 마루치 선생님

중 2 때 당번 날.

아침에 본관 게양대 앞에서

당번 조회를 한다.


고등학교 형들도 모두 나와야 하니

1개 학년에 5개 반 치고

최소 30여 명이 와야 한다.


어느 날 사회과목인가

신임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그분 첫 당번 담당하던 날.


날렵하게 생긴 이분은

태권도 3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군기를 잡으려는지

첫날부터 고등학교 당번 형들을

개 패듯 팼다.


정말 태권동자 마루치처럼

앞 돌아차기,

이단 옆차기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우리 같은 작고 어리바리

중학교 애들은 다행히

그 발길질에서 제외되었다.


보통 시골 남학교에서는

여자, 남자 선생 할 것 없이

얼차려 주고 두들겨 패는데 일상인데,

그런 시골에서도 이 선생의 폭행은

심각했나 보다.

 

매일 태권도로 애들을 두들겨 패다가

결국 2주 만에 잘렸다.

아마 이 학교 설립 이후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


그 선생님은 사회 불만세력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다른 학교에서도

폭력으로 쫓겨 온 것은 아닐까?


암튼 그렇게 짧은 태권선수의

시골학교 체험은 그렇게 끝났다.

2) 숙직 당번 학도병

학교가 크니

고등학교 1, 2학년이 되면

교련복을 입고

숙직 선생님 보조 숙직을 서야 한다.


대신 다음날 오전 수업을 빼준다.

해괴한 시스템이지만

뭐 밤에 근무 서고 오전 수업 면제해주니

우리는 신났던 것도 같다.


검은 교복 까마귀 세대. 증명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서 이런 멋을 부린 보너스 사진을 주었다.


밤에 몰래 1킬로 떨어진

구멍가게 가서

술 담배 추진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건전? 해서

그냥 과자나 사다 먹고 그랬다.


하루는 음악 선생이자

삐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선생님 타임에

내 근무가 잡혔다.


주사가 있는 샘들이 많아

늘 그게 고민거리였는데,

오늘이 바로 그 제삿날이다.


교무실에서 술 드시고 온 샘은

당번병들을 불러 세워

뭐라 뭐라 주사를 하셨는데,

그만 의자가 젖혀져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셨다.


웃지도 못하고

숙직실로 모셔다 드렸다.


플래시 들고 중고교 교실을

한 바퀴 돌고 새벽에 잔다.

그때만 해도 몰래 학교에서

자는 학생들도 있어

순찰을 잘 돌아야 한다.


산과 접해있고 울타리도 없어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출몰한다.


그렇게 당번 학도병은

3학년이 되어서야

면제받았다.


병영식 학교의 모범이었다, 우리는.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