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by 윤기헌

48. 당번 잔혹사, 1979


읍내 사립 남자 중고교는

같은 재단이었다.

인문계 남자 중고교는

오로지 이 곳 하나였으므로

우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생들은 전직들이 화려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직업에서 실패한 인생들 같았다.


당번이라 함은 일찍 학교 가서

물 주전자, 청소 뭐 그런

2인 1조 순번제인데

크게 힘들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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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권동자 마루치 선생님

중 2 때 당번 날.

아침에 본관 게양대 앞에서

당번 조회를 한다.


고등학교 형들도 모두 나와야 하니

1개 학년에 5개 반 치고

최소 30여 명이 와야 한다.


어느 날 사회과목인가

신임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그분 첫 당번 담당하던 날.


날렵하게 생긴 이분은

태권도 3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군기를 잡으려는지

첫날부터 고등학교 당번 형들을

개 패듯 팼다.


정말 태권동자 마루치처럼

앞 돌아차기,

이단 옆차기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우리 같은 작고 어리바리

중학교 애들은 다행히

그 발길질에서 제외되었다.


보통 시골 남학교에서는

여자, 남자 선생 할 것 없이

얼차려 주고 두들겨 패는데 일상인데,

그런 시골에서도 이 선생의 폭행은

심각했나 보다.


매일 태권도로 애들을 두들겨 패다가

결국 2주 만에 잘렸다.

아마 이 학교 설립 이후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


그 선생님은 사회 불만세력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다른 학교에서도

폭력으로 쫓겨 온 것은 아닐까?


암튼 그렇게 짧은 태권선수의

시골학교 체험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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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숙직 당번 학도병

학교가 크니

고등학교 1, 2학년이 되면

교련복을 입고

숙직 선생님 보조 숙직을 서야 한다.


대신 다음날 오전 수업을 빼준다.

해괴한 시스템이지만

뭐 밤에 근무 서고 오전 수업 면제해주니

우리는 신났던 것도 같다.


검은 교복 까마귀 세대. 증명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서 이런 멋을 부린 보너스 사진을 주었다.


밤에 몰래 1킬로 떨어진

구멍가게 가서

술 담배 추진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건전? 해서

그냥 과자나 사다 먹고 그랬다.


하루는 음악 선생이자

삐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선생님 타임에

내 근무가 잡혔다.


주사가 있는 샘들이 많아

늘 그게 고민거리였는데,

오늘이 바로 그 제삿날이다.


교무실에서 술 드시고 온 샘은

당번병들을 불러 세워

뭐라 뭐라 주사를 하셨는데,

그만 의자가 젖혀져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셨다.


웃지도 못하고

숙직실로 모셔다 드렸다.


플래시 들고 중고교 교실을

한 바퀴 돌고 새벽에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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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몰래 학교에서

자는 학생들도 있어

순찰을 잘 돌아야 한다.


산과 접해있고 울타리도 없어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출몰한다.


그렇게 당번 학도병은

3학년이 되어서야

면제받았다.


병영식 학교의 모범이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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