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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Oct 0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49. 야구에 미치다, 2004


롯데 자이언츠 프로야구단

홈구장은 사직동에 위치해 있어

'사직야구장'이라 불린다.

(다른 곳도 있겠으나

서울 청주사람들은 사직동이 있어

많이 헷갈려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데다

팬이라서 자주 간다.

아주 오랫동안 야구에

미쳐 살고 있다.


1) 꼴찌, 슈퍼스타

처음 프로야구를 만들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경기 인천 강원을 묶어

한 팀을 응원하라고 던져 주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대개

남쪽 출신들이 많아 

수도권을 우습게  것이다.


문제는 그나마 구단이라고 있는 게

맨날 진다. 꼴찌를 도맡아 한다.

전설의 삼미 슈퍼스타즈.

 

운동이란 이기고 봐야 하고

이겨야 팬들도 신나는데,

스트레스만 쌓인다.


우리들은

MBC 청룡 애들도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팬들도

부러웠다.


경기도 팀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

구단도 몇 번 바뀌고

서울로 튀기도 하고

경기도 사람 일부처럼

나도 그래서 야구가 싫었다.


2) 외국생활의 위안, 꼴통 타이거즈

외로운 외국생활에는

TV가 약이다.

틀어 놓고 예능이나 드라마

넋 놓고 있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마침 그때가 선동열,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할 때라서

유학생들은 주니치를 많이 응원했다.


그러다 오사카 교토를 포함하는

간사이 지역 

한신(阪神タイガース)이란 팀을 알게 됐다.


전통도 있고 명문구단 요소는 다 갖추었는데,

맨날 패한다.

그럼에도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일본에서는 한신 팬이라 그러면

뭔가 고집 있거나

좌파 거나

하여간 못 말리는 충성파들이다.


홈구장은 거지 같은데

그곳은 일본 야구의 성지인

갑자원, 즉 고시엔(阪神甲子園球場)이다.

일본인들 마음의 고향이라서

새로 짓지도 못한다.

뭔가 만화 주인공 같은 극적 장치는

다 갖고 있다.


도깨비 같고

팬들은 지랄 맞고

이 독특한 팀에 나는 금세 매료되었다.


더구나 세밀하고 아기자기

일본 야구가 재밌었다.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3) 충격의 신문지 응원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선임 교수가

야구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한다.


보는 것만 좋아하지

운동은 젬병이라 싫은데

억지로 가 봤다.


그때 알았다.

칭찬이 최고의 기술임을.


점잖은 교수들은 못한다고

욕도 비난도 없었다.

(고향이나 군대에서는

늘 욕만 먹었는데...)

잘한다, 잘한다 했다.

 

운동이 재밌기 시작했다.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야구부가 어느 날 사직에 갔다.

아...

3만명 가까운 만석의 관중들이

신문지를 찢어 들고

3시간 동안 술과 노래에.

유레카!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이건 축제였다!!!


이제 오랜 방황을 끝내고

여기서 뼈를 묻으리라.

그때부터

15년 넘게 꾸준히 응원하고

자주 직관을 간다.


지는 게 익숙하고

야구 못하는 팀이지만,

하도 실망해서 부산 사람

대다수는 냉소적이지만,

야구 못하는 팀을 응원하는 건

슈퍼스타즈나 한신 타이거즈에서

이미 이력이 나있다.


어쩌면 나에게 새로운

결핍을 선물하는 것일 수도.


어제도 패해서

몸도 피곤하고 약간의 두통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수 없듯

팬심은 오래 지속된다.


뭐 죽기 전에 우승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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