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Life 레시피>
시골집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가면 서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시골집에 가는 편이다. 시골집을 가는 동안 하나의 루틴이 만조 시간과 일몰 시간을 체크하는 일이다. 만조와 일몰이 겹치는 날에는 가능하면 바다를 찾아간다. 거기다 하늘까지 청명한 날은 노을 볼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까지 한다. 남편은 “노을이 그렇게 좋아?”라고 묻는다. 잔잔한 바다에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노을이 참 좋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주 보는 편인 데도 볼 때마다 빨간 노을빛에 붉게 물드는 하늘과 바다에 가슴이 설렌다는 것을…
“여보, 오늘 일몰 시간이 오후 7시 14분이래.”
“바닷물은?”
“에고… 간조네ㅠㅠㅠ.”
“어떻게 할까?”
“그래도 하늘이 맑으니 오늘 일몰이 아주 멋있겠는데!”
“그럼, 저녁 빨리 먹고 일몰 보러 가자!”
읍내에 들러 김밥 2줄과 컵라면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화단 가득히 잡초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빨리 노을을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는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예쁘게 수놓아질 바다를 향해 고고~~~
독일의 아우토반은 아니지만 바다를 가로막아 길을 만든 서해 바닷길을 약 10분 정도 지나면 잔잔한 바다가 눈앞에 쫘악~ 펼쳐진다. 보통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출렁이는 바다와 붉은 노을에 심취해 우리 둘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름다운 정적을 깨고 남편의 핸드폰이 거침없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마도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속으로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라고 가까스로 나를 억누르며 가곤 있었지만 이미 내 머리는, 내 가슴은, 내 눈은, 내 귀는 한도치를 넘기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라디오의 음악조차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라디오를 껐다.
남편의 통화가 끝날 때까지 눈을 감았다.
귀도 막고 싶었지만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리면 남편이 무안해할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냥 참았다.
‘어쩌겠어. 회사 일인데 ㅠㅠㅠ. 참아야지 ㅠㅠㅠ’
득도를 하는 동안 남편의 통화가 끝났다. 남편이 슬쩍 내게 말한다.
“노을 안 봐?”
“보고 있어.”
그 10분이 왜 그리 긴지…
분명 하늘에는 노을이 있긴 있었는데 본 건지 아닌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분명 눈에 보이긴 했지만 가슴으로 보지 않으니 ‘내가 헛 것을 봤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자주 가는 식물원 카페로 갔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와 붉은빛을 머금고 바다로 뛰어드는 노을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노을 맛집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리만치 뭔가 꼬이는 날은 더 꼬인다(변덕스러운, 철이 들든 나를 단련시키기 위함인가 ㅋ).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바람이 너무 부는 것이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게다가 춥기까지 ㅠㅠㅠ.
“여보, 아무래도 오늘은 밖에서 차 마시지 못할 것 같아.”
“그럼, 들어가서 빵이라도 사 갖고 가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아무 의식 없이 남편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다.
소금빵 두 개를 사 들고 카페를 나왔다. 좀 아쉽긴 하지만 그 근처 공원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노을 지는 모습을 보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 뭐야! 해가 없어졌어!”
“어,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잠깐 카페에 들러 빵을 사 갖고 나오는 동안 고새를 못 참고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늘도 희뿌옇게 변하면서 붉은 노을의 발자취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황홀할 정도로 붉은 노을을 기대하고 달려왔는데... 붉그튀튀 한, 좀 모양이 빠지는 붉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부화가 나려고 했다.
‘오늘은 꼬이는 날인가 보다… 참자… 참자…’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담에 또 오자.”
남편의 말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노을이 삐졌나 봐.”
“왜?”
“아까 바다 오는 길에 노을이 붉게 불태우며 공감해 달라고, 탄성을 질러 달라고 외쳐댔는데, 우리 둘 다 딴전을 부렸잖아. 자기 특기잖아! 내가 말할 때 공감 못하고 딴 세상 가 있는 것 말이야.”
“당신 삐진 것처럼 노을이 삐진 거야?”
“그래, 노을이 삐졌어. 내가 아닌 당신한테!”
“그럴 수도 있겠네 ㅎ”
심통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아무 죄도 없는 남편에게 한 방을 먹인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바다 어딘가에 있을 노을에게 말했다.
‘담엔 꼭 눈 마주치며 공감해 줄게. 미안해~’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노을이 이렇게 대답하는 듯했다.
“다음 다음 하지 마!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거야!”
그래, 맞다!
다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에 최선을, 정성을 다해 대해야 한다는 것을...
정성을 다해 공감하지 못했더니 노을을 보긴 했지만 노을을 본 것 같지 않은...
내 가슴을 떠난 노을이 슬퍼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