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과 델라

함께 걷는 길 위에 <Life 레시피>

by 이숙재

잠결에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짝 궁금하기도 했지만 달콤한 낮잠에서 벗어나기가 싫어 침대를 부여잡고 버틸 대로 버텼다.

그런데 분주함이 멈추더니 갑자기 조용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뭐지?’

보이지 않는 거실이 너무 조용해지자 슬금슬금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침대에 누워 보이지 않는 거실 소리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거다.

‘뭐지???’

스릴러 물이나 미스터리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터라 불안함이 턱 밑에 이르자, 참다못한 나는 결국 부여잡은 침대를 내팽개치고 재쌉게 거실로 나가 보았다.


어머나, 세상에나!!!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거실 책상에 앉아 남편이 바느질을 하고 있는 거다!

‘어머머... 뭔 일이래!!!’

남편은 바느질을 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보, 뭐 해요?”

남편은 내게 손짓을 했다.

“여보, 이리 와 봐! 나 바느질도 제법 잘하는 것 같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당신 이 가방 열고 닫을 때마다 힘들어하잖아. 그래서 내가 당신 힘들지 말라고 이 부분을 꿰매고 있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나!!!


별 일이 다 있네!

남편이 바늘과 실을 가지고 바느질하는 모습을 다 보다니!!!

혹여 아라크네가 우리 집에???


남편은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한껏 으스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보, 잘 봐! 여기 이 끝 부분을 이렇게 꿰매니까 열고 닫기가 훨씬 더 편하지!”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남편과 가방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당신이 한 거 정말 맞아? 웬일이야!!!”

“그러~엄! 나 잘했지?”

아들을 키워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왠지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남편과 살아본 결과 내 생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일텐데… 정말 놀랄 일이다.

“어머, 고마워! 그걸 눈여겨보다니... 감동인 걸!”

“그래애~~~! 이 가방 열고 닫을 때마다 당신 힘들어하는 것 봤거든 ㅎ”

공감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남편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를 감동시킨다.


“근데 실 색깔도 잘 맞췄네!”

“그렇지! 가방이 검은색이니까 검은색 실로 했지!”

“잘했어!!! 당신 센스도 짱이네!”

“그러~엄!”


사실 마음속으로는 ‘검은색 가방에 검은색 실로 꿰맨 게 센스???’라는 생각에 푸훕 웃음도 나왔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잔뜩 칭찬을 해 주어도 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헨리 <크리스마스 선물>의 남자 주인공 짐이 된 것 같은 남편 ㅎ.


다음 날, 나도 남편의 바지에 단추를 달았다.

하기 귀찮아 몇 날 며칠을 미루고 미뤄왔던 남편 바지에 단추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오헨리 <크리스마스 선물>의 여자 주인공 델라가 된 것처럼 ㅎ.

약간은 보은(報恩)의 성격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 ㅎ. 델라의 마음도 잔뜩 담아 한 땀 한 땀... ㅎㅎㅎ.


짐과 델라가 되어


https://youtu.be/yB9coF8ufsM?list=RDyB9coF8ufsM




* 표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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