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 신앙 일기 2 >

by 이숙재

그 친구를 만난 건 대학 MT에서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처음으로 간 MT에서 그 친구와 나는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며칠 동안 한 방을 쓰면서 그 친구와 나는 대학 4년 내내 마치 원앙 한 쌍인 듯 늘 붙어 다녔다. 그 친구는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에도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시간 이외에는 늘 나와 함께했다.

친구는 잠시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를 몹시 심할 정도로 챙겼다. 연애편지를 주듯이 내게 수없이 편지를 보내 주었고, 수업 시간에도 성경 말씀을 적은 쪽지를 한없이 건네주었고, 수요일이면 자기 교회에 같이 가자고 무진장 졸라댔다. 내 허락도 없이 나를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시킨 것도 그 친구였다. 좀 무례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친구 덕분에 동아리 선배들이 생겨서 좋기도 했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동아리 선배인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엄청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간히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영문학에서 신학으로 전과를 하는 동안 그 친구는 남편과 간간히 한국을 찾았고 그때마다 버선발로 나가 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메일을 읽는 듯 하지만 답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내 메일을 읽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결국 감감무소식이 되고 말았다. 요즘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그 친구로부터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참 후, 그 친구 소식을 다른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던 남편이 라스베이거스에 놀러 갔다가 그만 카지노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모든 걸 잃고 멕시코로 도망갔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친구였는데... 내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려고 그렇게나 열심이던 친구였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 친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아직까지 나는 행방을 알길 없는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길...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길...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친구의 순수한 믿음이 그대로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것처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 믿는다. 아니 이미 회복되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편 51편 12절)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편 3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지난여름 현관문 앞에서 우연히 만난 청개구리 한 마리가 생각난다. 양서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똘망똘망한 눈망울이며 알록달록한 매무새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니 귀엽기까지 했다. 한 자리에 서서 한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도 나를 보는 순간 그만 얼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당황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것 같았다. 왠지 “얼음, 땡!”하고 외쳐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꽁꽁 얼어버린 동상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멀끔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너 여기 왜 이러고 있어. 빨리 너희 집에 가~ 엄마가 기다리셔~”

내 얘기를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분명 못 알아 들었겠지만 ㅠ) 그 아이는 말뚝 인형처럼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내 눈에는 아주 어린 새끼 청개구리로 보였다. 그러니 나를 보고는 나보다 더 깜짝 놀랄 수밖에 ㅋ.

한참을 그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만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에 잔뜩 질려있는 어린 청개구리를 놀리는 것만 같아서... 귀여워서 보고 있는 것인데 그 아이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슬며시 눈을 피해 주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순간 청개구리가 폴짝 뛰어 마당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못 본 척 곁눈질을 하며 그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마당을 가로 질러 멀리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마음속으로 ‘휴우~ 다행이다! 집으로 잘 가겠지!’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지금도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청개구리의 모습이 생생하다.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엄마 잘 찾아갔겠지? 잘 찾아갔을 거야.’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한다 ㅋ.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한테 잘 갔겠지?


비 오는 날 아침,

생뚱맞지만 그 친구와 청개구리가 생각난다.

청개구리, 지금쯤 엄마 만나서 잘 살고 있겠지?!

내 친구, 지금쯤 하나님 품에서 잘 지내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https://youtu.be/KS4wNLfGD1s?list=RDKS4wNLfGD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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