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곰탱이 < Life 레시피 >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30대 때부터일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밤늦게까지 간식을 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30대가 되면서 밤늦게 야식을 먹는다는 것이 왠지 내 몸에 나쁜 짓을 하는 것만 같아 저녁 8시 이후에는 물만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요즘은 가능하면 7시 이후에는 물을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 자연스럽게 이 행동은 나의 루틴이 되었고, 7시 이후에 음식을 먹는 것은 나의 금기(禁忌) 사항 중에 하나로 자리 잡혔다.
그런데...
몇십 년 만에 그 금기(禁忌)가 펑펑 내리는 첫눈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와장창!’ 까지는 아니고 ‘살짝 쿵!’ 금이 가고 말았다. 거실 창문에 보이는 하얀 눈송이는 멋진 예술 작품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댔지만, 결국 그 멋진 첫눈이 내 금기(禁忌)를 깨고 만 것이다.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린 눈은 남편의 퇴근길을 꽁꽁 묶어 버리고 말았다.
보통 40분이면 충분히 오는 거리를, 5시간가량 걸려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 남편.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와아! 내가 드디어 집에 왔어! 집에 못 오는 줄 알았어! 어휴~ 배고파!”라고 말하며 나를 향해 씨익 웃는다. 마치 42.195km의 긴 마라톤을 무사히 끝내고 결승선에 도달한 듯한 남편의 표정을 보면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안쓰러움까지 자리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남편의 배고픔을 빨리 해소시켜 주는 것 밖에는...
“여태껏 저녁도 못 먹고 얼마나 배고팠을까!!! 떡국 끓여줄까?”
“좋지!!!”
남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를 꺼내 떡국을 끓였다.
남편은 얼마나 배고팠는지 게눈 감추듯이 꿀꺽꿀꺽 잘도 먹는다.
“당신은 안 먹어?”
“그러게... 사실 나도 저녁을 안 먹긴 했는데... 그래도 밤 12시가 넘었는데 먹기가 좀...”
“정~말 맛있네! 안 먹으면 후회할걸. 어서 같이 먹자! 먹고 좀 이따 자면 돼~”
밤 12시가 넘어 떡국을 끓이는 일도 처음이지만, 밤 12시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국을 보며 본능적으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것도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에이, 안 돼! 이 시간에 먹고 어떻게 자!!!”
“오늘 하루만이니까 괜찮아... 얼른 같이 먹자!”
어떤 유혹에도 꿋꿋이 참았어야 했는데... 참아야 했는데...
“여보, 너~~~ 무 맛있다!”
숟가락 가득히 떡국을 퍼서 입안에 넣고 있는 남편의 표정을 보면서 침이 꼴깍꼴깍... 꼴깍꼴깍...
마치 이반 파블로프의 실험에서 음식이 제공될 때마다 침을 흘리던 개처럼 남편의 유혹적인 감탄사와 함께 남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떡국을 볼 때마다 내 입속에는 침이 가득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여보, 오늘만 눈 딱 감고 먹어!!!”
남편의 유혹적인 감탄사가 아무리 나를 괴롭힌다 해도 참았어야 했는데... 참아야 했는데...
그만…
결국…
몇 년 동안 지켜왔던 나의 금기(禁忌)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놈의 떡국에 반기를 들고 만 것이다.
아니 남편의 유혹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었다.
아니 맛만 보았다고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먹자마자 침대에 누워버렸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았다.
밤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평상시 얼굴이나 똑같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속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밤늦게 먹어도 괜찮네! 미련곰탱이처럼 그게 뭐라고... 그 금기(禁忌) 사항 지키겠다고 아등바등...’
역시 ‘금기(禁忌)’는 깨지라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푸훕 웃음이 났다.
살짝 쿵!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금기(禁忌)를 가끔 깨는 것도 나름 괜찮네!’
‘가끔은 자유롭게, 여유롭게, 방만하게 사는 것도 나름 괜찮네!’
ㅎㅎㅎ.
https://youtu.be/5gu883WSIu8?list=RD5gu883WSIu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