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재 Apr 08. 2024

알다가도 모를 감정

독립 준비

“엄마, 나 대학원 마칠 때까지 잠시 학교 근처에 나가 살면 어떨까? ……”

딸아이는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새벽녘까지 그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차가 끊겨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요즘 부쩍 늘었다. 입술이 터지도록 공부하는 딸의 의논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분명 딸은 의논이라며 최대한도로 예의를 갖춰 정중한 어투로 이야기했지만(아마도 내가 받을 충격이 신경 쓰였는지 조심조심…), 내 귀에는 의논이 아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언으로 들렸다. 

‘갑자기?’

‘왜?’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

.

.



“난 절대 독립 안 할 거야. 아빠, 엄마가 다 해 주는데 굳이 독립을 해서 고생할 일이 없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아이는 여러 번 했다. 

그 말을 정말 믿고 있었나 보다.

의논 아닌 의논을 들으며 당황스러움인지… 황망함인지… 알다가도 모를 감정들이 머리와 심장을 마구 찔러댔다.




퇴근해 온 남편과 의논을 했다. 

딸아이의 독립 아닌 독립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서 뭉글뭉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남편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쩌겠어. 힘들다는데… 그렇게 하라고 해야지… 한번 나가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겉으론 담담해 보였지만 남편의 말소리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들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불을 끄고 깜깜한 방안에 누워 알다가도 모를 나의 감정들로 심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왜? 갑자기!’

‘아빠, 엄마가 싫나?’

밤새 눈을 감고 천장에 소설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새벽 예배에 가서 기도를 했다.

알다가도 모를 내 감정에 울컥 눈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남편과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남편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달걀을 삶고… , 생식을 타고…, 사과를 자르고… , 당근을 자르고…, 

남편은 마치 아침 먹는 로봇처럼 접시에 놓인 음식들을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는, 오늘 무슨 일을 할 거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우적우적우적우적…


아침을 다 먹은 남편은 

늘 하던 대로 이를 닦고 현관문 앞으로 갔다.

‘이제 허그를 하고 서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 뒤 현관문을 나가겠지.’

늘 하던 대로…….


그런데 다른 날과는 다르게 남편이 갑자기 하이 파이브를 하자고 한다.

그러고는

“힘내자!”라고 말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별 말은 없었지만 남편도 나처럼 알다가도 모를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 것 같았다.

:

:



그날 저녁, 딸아이는 

“아빠, 엄마가 싫은 게 절대 아냐! 아빠, 엄마한테 늘 고마워하고 있어! 그냥 이렇게 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고,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래. 자주 올게... ”라고 말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알다가도 모를 감정들이 뒤엉켜 쓸쓸한 슬픔이 온몸에 가득 차올랐다. 

알다가도 모를 감정 때문에 아이를 붙들어 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냥 슬프다 ㅠㅠㅠ.


그러나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다.

“그래! 우린 언제나 네 편이야! 

어디에 있어도 아빠, 엄마는 널 위해 기도할 거야! 

대견하다 우리 딸! 

사랑해~^^”



요 며칠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유난히도 보고 싶다.

내가 느꼈을 이 알다가도 모를 감정을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많이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죄송하다……

작가의 이전글 앗! 까먹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