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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Dec 20. 2023

마들렌의 가치

마음을 나누는 일이란


우리는 계획적인 것

계산적인 것의 차이분명히

말하기 어려운 세상을 사는 듯합니다.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그렇습니다. 


획을 촘촘히 짜기 위해서는 

당연지사 시간과 경비 등

여러 자원의 쓰임을 생각합니다.

높은 확률로 계획적인 사람은 셈에 빠릅니다.



'J'.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계획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하나의 알파벳으로 얘기하곤 합니다.


잡초도 키우기로 마음먹으면

더 이상 잡초가 아니라고 하죠.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분위기,

사람들의 생각에 이름이 붙여졌을 때

그 힘은 생각보다 강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이 시대를

J라는 화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꼼꼼한 분석과 세심함은 직장에서

환영받는 성격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이 꺼려하는 잡무는 물론,

1원 단위까지 맞춰야 하는 일 등

꽤나 귀찮은 일들을 오롯이 자기만족을 이유로

기꺼이 하려는 대범함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건 J로서 왕왕 들을 수 있는

잠깐 기분 좋은 칭찬일 뿐,

사실 저는 이런 치밀한 성격에 질리던 차였습니다.



모든 일에 자동적으로 비용과 효용을 따지고 드

뉴런들 때문에 꽤 피곤함을 느꼈던 듯합니다.

모두가 계획적이라 좋겠다 얘기했지,

왜 이렇게 계산적이냐 말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더 피곤한 구석은 따로 있었습니다.

기왕지사 살던 대로 시간이나 비용만 따지면 좋으련만,  언젠가부터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에

불쑥불쑥 감성이 끼어드는 겁니다.


계획, 계산, 감성이라는

도무지 한 데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세 단어가 뒤섞인 ‘나’는 정말 우습게도

그런 이들에게 쉽게 감동을 받곤 합니다.


대체 그런 순간이 언제인지 정의를 해보자면,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쉽사리

내키지 않는 수고를 타인을 위해

감내하려는 사람을 목도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에만 해도 금요일이니

힘내란 메시지를 담은 초코 휘낭시에와,

간절기에 두르기 좋은 손수건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유 없는 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분 없는 선물이라곤 주고받지 않던 제게 

꽤 놀라운 일이었달까요.


 

삐-빅.

J의 머리는 또다시 굴러갑니다.

만약 세상에 계산과 관련된 암묵적인 룰

있다면 바로 '기브 앤 테이크' 아닐까요.


아직 젊은 나이대머리만 피하자는 마음으로,

내가 받은 것으로 그칠 순 없다는 판단으로,

그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담 없이 주고받기 좋은 것으로

구움 과자 만한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직접 만들면

훨씬 더 저렴하겠다는 판단이 섰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박력분은 한 봉에 단돈 5,000원.

요즘은 점심특선도 5천 원 이상인데

박력분 한봉으로 마들렌 스무여 개를 만든다니.

꽤 남는 장사란 계산으로 베이킹을 시작했습니다.

치밀하게 계산적인 녀석이

한껏 더 치밀해지는 순간이랄까요.


그나마 저렴하고 후기 좋은

마들렌 틀을 고르고 골라 13,000원.

이건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름 거금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꽤나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박력분을 체에 거르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지(休止)를 참고,

손가락 마디마다 반죽이 꾸덕하게 묻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몇 번을 치대야

비로소 마들렌이 됩니다.


좀 귀찮은 것 같다는 감상이 스치는 찰나

저는 문뜩 우리의 마음이,

사람의 온정이,

마들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특출 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미약하게 시작한 마음이니

모두 필연적으로 볼품없게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필요로 하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작은 마음이라도

한없이 달콤하고 폭신하지요.


제가 만든 마들렌도 월요병에

걸린 직장인 여럿을 구출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동안의 일을 돌이켜 봤을 때 대부분의

세상사는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가끔은, 아주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호의를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밀한 계획도, 얕은 계산도

필요 없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슈퍼 J인 저는 그런 상황들이 무섭고, 

때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습니다.

박력분 한 봉으로 만들 수 있는

마들렌의 양은 생각보다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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