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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Dec 24. 2023

나는 산타가 아니야

꼭 착해야 할까요

개성 빼면 시체인

어린이들이라고는 하나,

크리스마스를 맞는 자세는

단 두 가지뿐입니다.


산타님, 저 올해는 꽤 착했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닌텐도 주시겠어요?


야, 그거 다 엄마 아빠야.
너넨 아직도 산타를 믿어?


여러분은 매년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맞으셨나요?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살 무렵 제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바로 <후라보노> 였어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것,

'화-'하기로 유명한 그 껌 말입니다.




이실직고하자면

저는 사실 1번을 가장한

2번 유형의 어린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일일 산타로부터 선물을

(부모님께서 미리 보내신 걸 알며) 받고도

크리스마스이브만 되면 어김없이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놨으니까요.

그것도 아주 큰 걸로 말입니다.

 

Copyright. Pixabay_wildhearts

아니, 이 아침에 살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래도 그렇지. 그럼 얘 양말은 어떡해.


밤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제 머리맡에 있던 큰 양말이,

그 바로 아래 잠들어 있는,

사실 잠들어 있는 척하던 제가

꽤나 당황스러우셨을 테지요.


그렇게 주머니를 뒤적거리시기를 몇 번

결국 제 양말 속에 ‘쏙’하고 들어있던 건

바로 껌이었습니다.




그해 선물을 받고

한껏 억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치원에 안 가겠다 고집부린 적도 없고

편식도 안 하고 때가 되면 잠만 잘 잤는데.

레고 같은 큰 선물을 바란  아니지만,

그렇다고 껌이라니…!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준다는

희망적인 단서를 달아 놓고

괜한 기대에 들뜨게 한 산타를

꽤나 오래 원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쩍

산타도 참 힘들겠다 싶습니다.

선함을 판단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영화 <크리스마스 연대기>에 나오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영상 편지처럼,

대부분의 어린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성취를 뽐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매사에 칭찬거리를 찾는

교사에게는 득이 되어야 마땅한데

저는 이상하리만큼

칭찬이 참 어렵습니다.




올 한 해 저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학생과 함께 했습니다.


유아는(*가명) 기분이 좋을 때

고개를 좌우로 젓고

양갈래 머리를 마구 흔들며

흥을 표현하는 어린이입니다.


또 비교적 촉감이 발달되어

별 다른 일이 없어도 지손가락에

꼭 밴드를 붙이고 옵니다.


학기 초,

키순으로 줄을 섰을 때

1번 어린이보다도 머리 하나만큼 작은

유아를 보고 다른 아이들은 제게

7살 동생이냐며 묻곤 했죠.


매 수업시간 교과서를 펼치고,

색을 골라 선 안의 면적을 조심스레 채우는 등

무엇이든 제가 일대일로 시범을 보여야

유아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라 했습니다.

유아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부럽다며

알맹이 없는 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사람마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유아도 언젠가는 홀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니

천천히 연습 중이라 얘기하곤 했었죠.


사실 여기까진 통합학급을 맡게 된 걸

알게 된 이후 내심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 제 몫을 나누는 어린이들이

교실 곳곳에 생긴 것입니다.


매일 아침 우유 먹는 시간에

유아 책상에 우유를 올려놓는 어린이,


골대 앞까지 공을 드리블 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유아 발 끝으로

칼각 패스를 하는 어린이,


날의 진도에 맞게

수학익힘책을 펼치는 어린이.

한 명이 아닌 여럿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유아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어린이들에게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기는 다양하더군요.


유아가 귀여워서,

그저 선생님을 돕고 싶어서,

또는 모둠 스티커 모으려고.


생각해 보면 교실 곳곳을 쓸면서도

청소하는 자신을 봐달라는 냥

정작 시선의 끝은 제게 있었던 어린이,

자원한 심부름 끝에도 씨익 웃으며

맛있는 사탕이 받고 싶다는 귀여운 속내를

드러내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행동이 착한 걸까요?


착한 행동만 하면 될까요,

동기까지 바람직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경우는 어떨까요.


Copyright. Pixabay_publicdomainpictures


산타라면 어떤 어린이를,

얼마만큼 칭찬했을까요.


흔하디 흔한 빨간 니트 하나 없는 저는

올해에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한 명을 향한 칭찬이

다른 어린이들에게는 이 되진 않을지,


저의 얕은 칭찬 때문에 아이들이 앞으로

'칭찬받을 수 있는 일'하려는 건 아닌지,


혹여나 칭찬이라는 타인의 시선에 묶여

정당한 자신의 몫을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지

 순간 고민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렇게 씁쓸히 돌아서고 나면 

결국 제때, 더 따뜻한 말을 못 해준 게 미안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은 산타가 아니야.

착한 일을 하고 꼭 증명받지 않아도 돼.

선생님은 단지 너희의 부족함을 아끼고,

미약하나마 성장하길 기다리는 야.


굳이 코 묻은 초콜릿을 건네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두 손을 맞잡아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12월이 되면 설렘과

동시에 싱숭생숭해집니다.

유년시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관문에 한껏 단련된 탓인지,

찬바람이 주는 쓸쓸함 때문인지,

이맘때만 되면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된달까요.


저는 올해도 얼마나

지킬지 모를 다짐을 합니다.

내년에는 조금  마음 놓고

따뜻한 람이 겠다는 다짐을요.

Copyright. Pixabay_monicore

혹시 이게 바로 산타의

리스마스 매직 아닐까요.

어쩌면 산타가 유일하게 약속할 수 있는 건

스스로 돌아보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다짐하는 이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 크리스마스이브네요.

이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사람에게도

미리 인사를 전하려고 합니다.


올해도, 내년에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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