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와 효도의 상관관계
겨울은 가난이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옷의 두께감, 옷감의 재질,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지만 값의 7할을 차지하는 로고 등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풍요와 결핍이 삐죽거립니다. 옷이 얇은 여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죠. 글을 시작하기 앞서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성장 과정에서 큰 결핍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과 상관없이 개인의 만족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다만, 음식에 울고 웃을 만큼 먹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조금은 독특한 장소에서 이 세상의 이치라는 자본주의를 느끼곤 했습니다. 바로 2월의 영덕, 강구항에서요.
너네 아빠는 처갓댁 가듯
영덕을 가자 그러네.
어느 집이든 레퍼토리가 있겠죠. 제게는 저 문장이 딱 그렇습니다. 대구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꼭 듣는, 들어야만 여행이 시작되는 그런 대사입니다.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라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매번 행선지가 영덕이라니, 대구 안에 있는 처갓댁보다도 더 멀리 있는 영덕은 이리 자주 가는 게 우습다, 그러면서도 또 설렌다. 저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경상도인들은 정 없어 보이는 한 문장에 버라이어티 한 억양과 꽤나 많은 의미를 담고는 합니다. 저는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매년 겨울 영덕을 찾곤 했습니다.
강구항으로 향하는 좁은 다리를 건너면 동시에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주차도, 자리 선정도, 대게를 고르는 것도 편한 일반 식당에 들어갈 것인지, 대게 직판장에서 산 다음 센터로 이동해 자리값을 내고 식사할 것인지.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100% 후자의 방법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쪽이 조금이라도 더 경제적이라 생각하셨겠지요.
이 때는 발품이 생명입니다. 추위, 허기, 호객 행위 등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게 시세 조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기 딱이니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엄마는 <작년에 샀던 곳에 가자> 파, 아빠는 <새로운 곳을 찾자> 파를 대변하곤 했습니다. 대게를 구매할 때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운전한 노고를 인정해 아빠의 말에 힘이 좀 더 실리지만, 전세 역전은 한순간입니다.
그건 바로 수율이 별로일 때입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이 빨간 옷의 신사가 되어버린 대게님만이 엄마의 판정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맛만 있는데 뭐가 문제람’ 생각하면서도 옆 테이블의 대게를 흘긋흘긋 쳐다봅니다. 더 탐스러운 대게를 발견했을 때는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샀을까 궁금했지만, 이내 산 곳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든 조금 더 고가의 대게를 주문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다시금 우리 가족이 대게 사던 과정을 떠올려봅니다. 노포 사장님께서 시원시원한 손놀림으로 한 마리, 두 마리 최상품 대게부터 꺼내주시는 걸 한참 구경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아빠 마음속 깊이 품어왔던 예산에 맞추고, 4인 가족이라는 인원을 고려해 대게와 홍게를 적절히 섞어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무한정 있는 게 아닌 이상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오물거리는 입으로, 흠뻑 젖은 발끝으로 느꼈던 것이죠. “지현아, 이게 박달대게라는 거야"라며 말씀하시던, 조금은 상기된 듯한 아빠 목소리에서 물질에 대한 동경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고요.
그래서일까요. 돈을 벌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께 제대로 된 대게를 한 번쯤은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 어린 날, 강구항에서 이런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쯤 초등교사가 아니라 거금을 융통하는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모님과 대게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독립한 뒤 개인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확연히 가족 여행은 줄었고, 우리 가족만의 연례행사인 대게 탐방도 사라진 게 내심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겁게 와닿았던 것은, 일을 시작한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부모님께 드린 선물을 돌아보니 현금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최고지 뭐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상품권이나 기프티콘, 현금 등 제게 자율권을 허락하는 선물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부모님이 도대체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단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대게입니다. 12월 월급을 받아 들고서는 당당히 올 연말에는 대게를 쏘겠다며 선포했습니다.
설레어하며 기다리기를 한 달, 드디어 약속대로 대게를 먹으러 영덕에 갔습니다. 특히 오늘은 대게와 여러 음식이 코스로 나오는 일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대게 녀석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더군요. 사회초년생에게 대게의 벽이란 그 껍질만큼이나 견고했습니다. 홍게와 대게를 섞어 여섯 마리밖에 못 시켜 양도 그리 많지 않았을뿐더러, 이제 겨우 12월 끝물이라 그런지 사실 대게의 질도 기대했던 만큼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날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대게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확신하건대 수율과 차림비 따위는 마음 한편에 묻어놓고 대게를 편히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일 것입니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저는 부모님이 여느 제약 없이 대게를 음미하시는 것만 바랐으니 저로서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부모님을 면담자로, 취재를 가장한 취조를 시작합니다. 제가 독립한 건 작년 8월, 그러니까 올해는 부모님과 완벽히 다른 시간을 보냈습니다. 떨어져 있던 2023년을 훑다 보면 부모님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습니다.
경상도 남자의 말문을 트게 하는 건 꽤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뭘 이런 걸 하냐는 식으로 머쓱해하던 아빠도 엄마가 미주알고주알 말하자, 세 번째 질문쯤부터는 웃긴 콘텐츠에 참여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참여했습니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음식은? 대게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음악은?
사나이 눈물, 미련의 블루스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척 / 예비 사위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니 / 꼴값을 떨고 있네ㅋㅋㅋㅋ (* 엄마의 답변이 오글거린다는 아빠의 소신발언이지 시비는 아닙니다)
- 올 한 해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촌 집, 3박 4일 머무르며 혼자 티브이를 틀어 놓고 창문을 내다보는데 ‘여기가 내가 평생 살 곳이구나’ 싶어서 좋았음
- 올 한 해 가장 만족한 소비는?
친구에게 대접한 식사 한 끼 / 경운기
- 올 한 해 가장 즐거운 일은?
포항 여행, 펜션을 잡아줘서 좋았음 / 상견례
- 올 한 해 가장 감사한 일은?
건강 이상 없이 무탈히 한 해를 보낸 것
- 올 한 해 가장 아쉬운 일은?
남편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안 좋아진 것 / 로또 안된 것(*휴.. 아빠…^^)
- 올 한 해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일은?
회사일/ 자두밭 가꾸기
- 올 한 해 가장 소홀했던 일은?
집안일과 운동 / 취미생활
- 올 한 해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일은?
외할머니 모시기 / 할리 오토바이 사기(*휴… 아빠….!!!!ㅋㅋㅋㅋ)
- 내년에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드럼 배우기 / 자신을 이기는 극기 운동해 보기
꼬깃꼬깃 접어 간 질문 목록이 빛을 발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어찌어찌 살아내긴 했지만, 올 한 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단 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부끄럽다는 이유로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속마음이었겠지요.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대구로 오는 길이 이보다 더 알찰 수 있었을까요.
돌이켜보면 어린 날의 저는 영덕행 나들이를 온 마음을 다해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별 소득이 없어도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먼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했고, 세 시간 남짓 선택권도 없이 아빠의 트로트 플레이리스트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강구항에 내리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 바닷바람과 맞서 앞머리를 한참 휘날리고, 그러다 보면 곳곳의 물웅덩이에게 신발까지 헌납하는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매년 찬 바람이 불어오면 영덕에 가고 싶은 건 아마 가족들 때문이겠지요. 가족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와 음식이 있다는 건 크나큰 행복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별 것 아닌 일도 속속들이 얘기하며 칭얼거리고, 온몸을 던져 안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왜인지 앓는 소리 하는 것도 부끄럽고,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곤 합니다. '나도 이미 다 큰 어른인데!' 하는 마음과 '얘기하면 걱정하실 텐데' 하는 마음 사이 그 어디쯤이랄까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가족들과의 소통을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남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물한 시간을 최대한, 그리고 감사히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올해도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건강하게 곁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모든 가정이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