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야 Dec 27. 2023

겨울의 자본주의

대게와 효도의 상관관계


 겨울은 가난이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옷의 두께감, 옷감의 재질,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지만 값의 7할을 차지하는 로고 등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풍요와 결핍이 삐죽거립니다. 옷이 얇은 여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죠. 글을 시작하기 앞서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성장 과정에서 큰 결핍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과 상관없이 개인의 만족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다만, 음식에 울고 웃을 만큼 먹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조금은 독특한 장소에서 이 세상의 이치라는 자본주의를 느끼곤 했습니다. 바로 2월의 영덕, 강구항에서요.




 너네 아빠는 처갓댁 가듯
영덕을 가자 그러네.

 

 어느 집이든 레퍼토리가 있겠죠. 제게는 저 문장이 딱 그렇습니다. 대구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꼭 듣는, 들어야만 여행이 시작되는 그런 대사입니다.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라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매번 행선지가 영덕이라니, 대구 안에 있는 처갓댁보다도 더 멀리 있는 영덕은 이리 자주 가는 게 우습다, 그러면서도 또 설렌다. 저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경상도인들은 정 없어 보이는 한 문장에 버라이어티 한 억양과 꽤나 많은 의미를 담고는 합니다. 저는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매년 겨울 영덕을 찾곤 했습니다.

Copyright. 네이버 블로그_여교

 강구항으로 향하는 좁은 다리를 건너면 동시에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주차도, 자리 선정도, 대게를 고르는 것도 편한 일반 식당에 들어갈 것인지, 대게 직판장에서 산 다음 센터로 이동해 자리값을 내고 식사할 것인지.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100% 후자의 방법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쪽이 조금이라도 더 경제적이라 생각하셨겠지요.


 이 때는 발품이 생명입니다. 추위, 허기, 호객 행위 등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게 시세 조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기 딱이니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엄마는 <작년에 샀던 곳에 가자> 파, 아빠는 <새로운 곳을 찾자> 파를 대변하곤 했습니다. 대게를 구매할 때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운전한 노고를 인정해 아빠의 말에 힘이 좀 더 실리지만, 전세 역전은 한순간입니다.


 그건 바로 수율이 별로일 때입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이 빨간 옷의 신사가 되어버린 대게님만이 엄마의 판정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맛만 있는데 뭐가 문제람’ 생각하면서도 옆 테이블의 대게를 흘긋흘긋 쳐다봅니다. 더 탐스러운 대게를 발견했을 때는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샀을까 궁금했지만, 이내 산 곳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든 조금 더 고가의 대게를 주문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다시금 우리 가족이 대게 사던 과정을 떠올려봅니다. 노포 사장님께서 시원시원한 손놀림으로 한 마리, 두 마리 최상품 대게부터 꺼내주시는 걸 한참 구경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아빠 마음속 깊이 품어왔던 예산에 맞추고, 4인 가족이라는 인원을 고려해 대게와 홍게를 적절히 섞어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무한정 있는 게 아닌 이상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오물거리는 입으로, 흠뻑 젖은 발끝으로 느꼈던 것이죠. “지현아, 이게 박달대게라는 거야"라며 말씀하시던, 조금은 상기된 듯한 아빠 목소리에서 물질에 대한 동경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고요.




 그래서일까요. 돈을 벌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께 제대로 된 대게를 한 번쯤은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 어린 날, 강구항에서 이런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쯤 초등교사가 아니라 거금을 융통하는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모님과 대게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독립한 뒤 개인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확연히 가족 여행은 줄었고, 우리 가족만의 연례행사인 대게 탐방도 사라진 게 내심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겁게 와닿았던 것은, 일을 시작한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부모님께 드린 선물을 돌아보니 현금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최고지 뭐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상품권이나 기프티콘, 현금 등 제게 자율권을 허락하는 선물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부모님이 도대체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단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대게입니다. 12월 월급을 받아 들고서는 당당히 올 연말에는 대게를 쏘겠다며 선포했습니다.



 설레어하며 기다리기를 한 달, 드디어 약속대로 대게를 먹으러 영덕에 갔습니다. 특히 오늘은 대게와 여러 음식이 코스로 나오는 일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대게 녀석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더군요. 사회초년생에게 대게의 벽이란 그 껍질만큼이나 견고했습니다. 홍게와 대게를 섞어 여섯 마리밖에 못 시켜 양도 그리 많지 않았을뿐더러, 이제 겨우 12월 끝물이라 그런지 사실 대게의 질도 기대했던 만큼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날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대게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확신하건대 수율과 차림비 따위는 마음 한편에 묻어놓고 대게를 편히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일 것입니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저는 부모님이 여느 제약 없이 대게를 음미하시는 것만 바랐으니 저로서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부모님을 면담자로, 취재를 가장한 취조를 시작합니다. 제가 독립한 건 작년 8월, 그러니까 올해는 부모님과 완벽히 다른 시간을 보냈습니다. 떨어져 있던 2023년을 훑다 보면 부모님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습니다.


 경상도 남자의 말문을 트게 하는 건 꽤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뭘 이런 걸 하냐는 식으로 머쓱해하던 아빠도 엄마가 미주알고주알 말하자, 세 번째 질문쯤부터는 웃긴 콘텐츠에 참여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참여했습니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음식은? 대게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음악은?

사나이 눈물, 미련의 블루스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척 / 예비 사위

-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니 / 꼴값을 떨고 있네ㅋㅋㅋㅋ (* 엄마의 답변이 오글거린다는 아빠의 소신발언이지 시비는 아닙니다)

- 올 한 해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촌 집, 3박 4일 머무르며 혼자 티브이를 틀어 놓고 창문을 내다보는데 ‘여기가 내가 평생 살 곳이구나’ 싶어서 좋았음

- 올 한 해 가장 만족한 소비는?

친구에게 대접한 식사 한 끼 / 경운기

- 올 한 해 가장 즐거운 일은?

포항 여행, 펜션을 잡아줘서 좋았음 / 상견례

- 올 한 해 가장 감사한 일은?

건강 이상 없이 무탈히 한 해를 보낸 것

- 올 한 해 가장 아쉬운 일은?

남편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안 좋아진 것 / 로또 안된 것(*휴.. 아빠…^^)

- 올 한 해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일은?

회사일/ 자두밭 가꾸기

- 올 한 해 가장 소홀했던 일은?

집안일과 운동 / 취미생활

- 올 한 해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일은?

외할머니 모시기 / 할리 오토바이 사기(*휴… 아빠….!!!!ㅋㅋㅋㅋ)

- 내년에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드럼 배우기 / 자신을 이기는 극기 운동해 보기


 꼬깃꼬깃 접어 간 질문 목록이 빛을 발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어찌어찌 살아내긴 했지만, 올 한 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단 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부끄럽다는 이유로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속마음이었겠지요.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대구로 오는 길이 이보다 더 알찰 수 있었을까요.




 돌이켜보면 어린 날의 저는 영덕행 나들이를 온 마음을 다해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별 소득이 없어도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먼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했고, 세 시간 남짓 선택권도 없이 아빠의 트로트 플레이리스트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강구항에 내리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 바닷바람과 맞서 앞머리를 한참 휘날리고, 그러다 보면 곳곳의 물웅덩이에게 신발까지 헌납하는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매년 찬 바람이 불어오면 영덕에 가고 싶은 건 아마 가족들 때문이겠지요. 가족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와 음식이 있다는 건 크나큰 행복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별 것 아닌 일도 속속들이 얘기하며 칭얼거리고, 온몸을 던져 안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왜인지 앓는 소리 하는 것도 부끄럽고,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곤 합니다. '나도 이미 다 큰 어른인데!' 하는 마음과 '얘기하면 걱정하실 텐데' 하는 마음 사이 그 어디쯤이랄까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가족들과의 소통을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남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물한 시간을 최대한, 그리고 감사히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올해도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건강하게 곁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모든 가정이 평안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마들렌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