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_김승섭
상처받았고 괴롭지만, 스스로에게 '별거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애써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아픔의 원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남자가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은 '강한 남자'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인 것일 수 있습니다.(21쪽)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중략)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22쪽)
즉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 절약형질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 박사의 이름을 따 ’ 바커 가설‘이라고도 부릅니다.(중략)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중략) 우리가 인간의 몸과 질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하지요.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때로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43쪽)
이는 저소득층이 자신이 처한 열악한 사회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이유로 흡연할 경우, 그 점을 고려하지 않은 금연정책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61쪽)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야 합니다.(108쪽)
원진레이온은 1964년 당시 “오래된 기계라서 서류도 폐기되어 가격도 알 수 없던” 그 기계들을 인수합니다. 그것도 36억 엔이라는 당시 중고기계로서는 매우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그 높은 가격은 일본이 한국에 공공자금 형태로 내놓은 배상금이 기계 값으로 일본의 동양레이온에 다시 유입되는 형태로 지불되었습니다.(112쪽)
안전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고, 소방공무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사회의 안전을 최전선에서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은 국민인 우리의 몫 아닐까요.(147쪽)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인간의 몸의 상처를 남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말합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지요.(175쪽)
학생들을 채근하지 않고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어떤 상처인지 입 밖으로 말해야 트라우마가 극복된다'며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나 곁에 있겠다'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한번 피해자의 경험을 가진 파란 눈의 아이들은 '우월한' 집단이 되어서도 '열등한'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웠습니다. 제인 엘리엇은 그 경험 속에서 이 실험이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재소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복역해야 하고 또 그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걸까요. 죗값을 지르기 위해 들어와 있는 그들의 인권 보호는 어디까지이며 밤낮없이 일하는 교도관의 근무환경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한국 사회가 양극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관계망도 역시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연구가 향후에 진행되리라 기대해 봅니다.(267쪽)
이것은 21세기 사회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크리벨 교수는 위험을 바라보는 사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사전 주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는 대신, 이제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 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통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상처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상대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 편에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 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