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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15. 2024

내 그릇 넓히기

어른의 어휘력_유선경

들어가며

 여태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비로소 단어를 많이 모르는구나 싶었다. <어른의 어휘력>을 읽으면 내 생각을 넓히고, 또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구절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 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말이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 하는 식의 감을 믿는다.
글쓰기가 업인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어휘와 표현을 찾는 것이 목표다. (중략) 바로 찾아 헤매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과일 하나 설명하기도 이렇게나 힘든데 나는 알고 당신은 모르고, 나는 겪고 당신은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라면 오죽할까. 그래서 대화가 각자 말을 하거나, 그저 그런 진부한 언어의 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인간이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낱말 50만 여개, 5500만여 개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말과 글은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증표다.
말과 글의 관성에 갇혀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타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말에는 눈과 관련한 낱말이 참 많은데 머루눈도 예쁘고 샛별눈도 예쁘지만 필요한 눈은 맘눈과 참눈이 아닐는지.
그러나 그뿐, 눈물은 날를 변화시키지도 상황을 바꾸지도 못한다. 말 안 하면 왜 우는지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울지 마라, 소리 내 말하라, 글을 쓰라.
자신이 몸과 정신으로 체험한 낱말을 사용해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체험한 낱말의 개수가 살아온 나날만큼 늘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체험하고 싶은 낱말을 수집하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다. 우리 십 대 시절에 ‘사랑’이 꼭 그러했던 것처럼.
인격은 기본적인 어휘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에게 어떠한 의도로 쓰는 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이다. (중략)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다. (중략) 모르거나 잘못 아는데 올바로 알려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평가가 해악인 이유는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다. 무엇이 쓸모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차별로 이어진다.
표정을 읽는다는 게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의 투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여겨서다. 특히 어른이 가진 표정의 대부분은 언어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화의 소산이다.
"내가 나라고 할 때는 당신들 모두를 가리키는 거요." 자료를 찾는 이유는 당신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서다. 그럴 만한 타당성과 개관성을 확보라고 싶어서다.
영화를 한 번 본 후에는 볼륨을 완전히 줄여놓고 영상만 보면서 대사를 쓰기도 했다. 기억력 테스트가 아니다. 내 마음대로 새로 쓰는 것이다.
6하 원칙 중 어느 요소를 남기고 뺄지, 어느 것을 먼저 터트리고 나중으로 미룰지, 혹은 끝까지 숨길지 등을 선택하는 감각은 기본적인 문장 쓰기 연습으로 체득할 수 있다.
곰비임비 모인 글을 보면 그 글을 쓴 작가와 작품보다 그 글을 거울 들여다보듯 한 스무 살의 나, 서른 살의 나, 마흔 살의 나, 가 보인다. 그런 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곰비임비: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부)
벼락같이 들이닥친 외세의 침입이거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국가든 개인이든 망한 원인은 대체로 이러하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만 받아들이거나, 남의 생각 모르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거나.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의 경계가 순수하지 않은 시대에 앞서의 문장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겠다. 남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정서에 감염된 줄 모르고 자기 취향이나 정서 선택 가치관이라고 믿거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면서 남의 생각을 많이 한다고 착각하거나 자기 관점 없이 남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따라가거나 자기 관점과 같은 것만 받아들여 자아만 비대하게 키운다면 위험하다.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망칠 구멍이 많은 비겁한 어휘를 고른다.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단적이고 편협한 어휘를 쥐려 한다.
고정된 정의에서 벗어나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어휘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휘의 쓰임새가 달라지면 의식의 세계가 커지고 깊어진다.

마치며

 국어사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책이다. 각주가 달린 단어 중 아는 게 있으면 그렇게 반가웠다. 새로 보는 단어가 나와도 외워야 한다는 강박에 벗어나 어감과 뜻을 그 자체로 즐기려고 노력했다. 가끔 대체 뭐라 표현할지 몰라 답답했던 속을 긁어주는 시원한 느낌도 받았다.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죄다 읽으면서 왜 국어사전을 읽어 볼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또, 나날이 집중력이 떨어져 책을 읽을 때 필사를 하곤 했다. 부족함을 보완할 좋은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게 아쉬웠다. <어른의 어휘력>을 읽다 좋은 방법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으면 긴 인덱스로 표시만 해두고 넘어가는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다음 표시된 인덱스 위주로 다시 읽으며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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