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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Mar 12. 2024

실패와 도전 사이

초등학교 3학년의 학급임원선거

학기 초의 위엄을 몸소 느끼고 있다. 학생 이름도 덜 외웠는데 임원선거라니. 여태 1학년만 맡았기 때문인지 더욱 경황이 없다. 무엇이든 직접 해봐야 느끼는 게 다지만, 마음이 급한 나는 학급임원선거 꿀팁을 수소문했다.


두 시간은 해야 할걸?


발령 첫 해 3학년을 맡았던 동료의 말에 따르면, 3학년 아이들의 열정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23명 중 10명이 회장에 지원했더라나. 다음 해에 6학년을 맡으니 아무도 안 나와서 같은 공간이 맞나, 이렇게 성정이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란 한 울타리에 묶여도 되나 싶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공식적으로 학급임원선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창체 한 차시뿐. 묘수가 필요했다.




진정한 리더의 자격


금요일 거를 앞두고 그 전날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가장 긴장한 건 나였다. 자칫 잘못하면 학급임원선거는 인기 선거에 그치기 때문이다. 분위기 조성은 필수다.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배려받았다고 느꼈는지, 학급 임원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등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의 경험으로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정리하자 정직, 공감, 배려 등으로 추려졌다.


입후보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가정에서 소견문을 작성해 왔. 기대보다 아이들의 소견문은 뛰어났고, 학부모님들께서 이른 저녁 작문 숙제를 하셨겠구나 싶어 죄송하고 감사했다. 뽀로로 인형까지 만들어 온 아이, 활동지 앞뒤를 꽉 채워온 아이 등. 답지 않게 진지한 모습들이 참 멋졌다.


그렇게 올해도 역시나 회장과 남부회장에 각 8명, 여부회장에 7명이 입후보했고, 결국 두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내가 나서서 제대로 해보자고 분위기를 조성해 버린 게 아닐까.


실패와 도전 사이

회장 선거 실패한 사람도
부회장에 나가도 돼요?


회장 선거 이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부회장 선거가 남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삐죽삐죽 손을 들고 부회장에 나가도 되는지 질문했다. 회장 선거에 떨어진 학생이었다.


아직 3학년이라 완벽히, 매끄러운 어휘를 선택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실패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부회장에 다시 '도전'해도 된다고 스리슬쩍 단어를 바꿔서 제시했다.


우리는 왜 도전이 꺼려질까. 아마 이면에 도사리는 실패를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재지 않고 덤빌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런저런 일들로 도전과 실패, 그로 인해 책임질 것들이 얼마나 큰 지 학습된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씁쓸했다. 우리 아이들은 실패보다 도전에 조금 의미를 두고 살아가길,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조용히 소망했다.




뼈 아픈 네 번의 도전


꿈꾸는 모든 일이 곧바로 이뤄진다면 세상은 온통 핑크빛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핑크빛이기만 하면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 회장부터 남자 부회장까지 참여한 학생이 있었다. 재적수의 과반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회장에 두 차례, 남부회장에 세 차례 투표를 거친 꼴이다. 이번에는 당선될까 한껏 부푼 마음이 '톡'하고 터지길 네 번. 결국 고배를 마신 아이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3학년은 학급임원선거를 하고 울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는 내가 꽤나 T(사고형)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생존형 F로 돌아왔다. 모름지기 교사는 공감을 잘하는 게 편하다(?)


다른 학생들이 보고 있으니 위로는 쉬는 시간에 따로 하자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함께 세 번의 경합을 펼친 남부회장이 소감을 발표하러 나오는 길에 교실을 반 바퀴 빙 둘렀다. 그리고 눈물을 쏟고 있는 친구 뒤에 가 조용히 섰다. 등을 쓰다듬고, 포옥 안아준 뒤 그제야 앞으로 나왔다.


쉬는 시간이 되자 더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한 아이도 빼놓지 않고 모두 그 학생을 둘러싸고 조용히, 울음이 멈추길 기다렸다. 다음 기회도 있지 않냐, 2학기에 되는 게 더 멋진 거다 위로를 건넨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더 가르칠 게 있을까. 올 한 해 나도 함께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급임원선거는 참 의미 있는 활동이다. 이제 막 3학년이 된 아이들이 자치회를 운영할 수 있는가 의구심을 가졌던 날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활 주변에서 리더의 자질이 필요한 사례를 찾아냈고, 선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또 대표자 몇 명만이 전부가 아니라, 결국 그들을 지지하고 계속 살피는 우리의 역할이 더 중요성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얼른 자라면 좋겠다. 우리가 평범히 누리고 있는 선거의 원칙들이, 어떻게 생겨 온 것인지 함께 얘기 나누고 싶다. 3학년이라 고이 아껴두었던, 이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어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마음이 단단해지도록 돕고 싶다.


작년에 힘들다면서 왜 교직을 놓지 못하냐는 말을 유독 많이 들었다. 나의 어쭙잖은 식견이 다른 교사를 함부로 재단하는 잣대가 될까 말을 아꼈던, 아낄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었다. 이제는 조금 더 용기 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때도, 앞으로도 유일무이한 답이 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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