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명대사
아빠는 군위에 산다. 경북도민으로 퇴거 절차를 밟았던 게 민망할 정도로 그는 빠르게 다시 대구 시민이 되었다. 대략 5년 전부터 아빠는 5일 장돌뱅이 신세를 자처하고 있다. 할머니의 치매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때부터다. 불행 중 다행이란 건 이런 데 쓰는 말일까. 이 씨 형제들은 힘을 모아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5일, 울진에 사는 삼촌은 주말마다 군위 집을 지킨다. 군위에 사는 고모는 간헐적이란 말 뒤에 상시 대기 중이다.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조금씩 기억을 잃고 있다. 치매 환자의 기억법은 재미있다. 적어도 할머니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가며 개그맨을 자처하는 형제들은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본 치매는 다르다. 가끔 서늘하고, 때론 슬프다. 치매 초기에만 해도 할머니는 또렷이 3남 1녀를 기억했다.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자식들의 이름을 눈앞에 있는 인물에 매치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까지 기억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막내 삼촌은 이름을 잃었다. 그녀는 삼촌이 태어나기 전, 저 멀리 과거에 살고 있다.
할머니는 말 그대로 옛날 사람이다. 유독 장손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여전히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최근까지 이름을 불린 손주라곤 나밖에 없으니. 그녀의 뿌리 깊은 장손 사랑이 조금 옅어진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아니면 어떻게라도 기억을 붙들어 놓고 싶은 아빠의 서술법이 잘 먹힌 것뿐일 수도 있다. 아빠는 나를 꼭 ‘아닌 건 아니잖아요! 손녀’라고 말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곧장 “그렇지. OO 이는 똑똑하지. 할 말은 하잖아.”라고 덧붙이셨다.
순전히 어른들의 말을 빌린 일화는 이렇다. 언제 그런 말을 한 건지도 모를 정도로 어렸을 때니, 내가 대략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가 아닐까. 엄마에게 투덜거리는 날 보고 할머니는 그래도 엄마인데 그러면 되겠냐고 하셨단다. 그 말에 난, 아닌 건 아니지 않냐고 맞받아쳤다고. 당찬 모습에 감명받은 건지, 내심 며느리에게 속 시원한 말을 대신 뱉어준 손녀가 기특해서인지. 이미 한 데 뭉쳐져 버린 시간의 실타래에서 유독 그 말을 기억하는 까닭을 이제는 알 수 없다. 나는 민망해서, 엄마는 어이없어서, 할머니는 속 시원해서, 그리고 아빠는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기억조각이라. '아닌 건 아니잖아요'라는 인생의 명대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