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도전, 그 자체가 아름답다.

지혜,주현이의 전교임원 도전기

by 손길

작은 학교는 교사수가 적다. 그렇기에 교사마다 추진해야 하는 업무는 큰 학교 대비 많다. 작년 여러 업무들 중 하나가 자치활동이었다. 봉사위원 및 학생 자치회 활동 계획, 전교임원선거 등의 업무가 여기에 속했다.

전교임원 선거는 1년 학교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다. 작년의 경우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으로 후보자 운동은 선거 벽보 외에는 전혀 할 수 없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방송실에서 후보자 연설 생방송 진행도 불가능했는데 바로 방송실 옆 공간이 등교시, 등교후 유증상 학생들의 임시관찰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보자 연설도 동영상으로 제작, 편집하여 각 교실에서 시청하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코로나로 전교 임원에 출마하는 학생들 또한 적을 것이라 걱정했다. 다행히 5학년 부회장 후보는 8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출마 희망 신청서를 제출했다. 반면 전교 회장 출마 희망 학생은 단 1명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무투표로 전교 회장은 선출 가능하나 6학년 전교 부회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기에 문제가 되었다. 5학년 담임교사들은 최대한 전교 회장 출마 희망 학생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출마를 권장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자치회 담당자이기도 했고 5학년 담임이기도 했기에 전교 임원 출마에 열심히 홍보를 했다.


“우리반에 용기 있는 우현이가 회장 출마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마지막 시기인 6학년이 될 여러분, 고민 중인 친구가 있다면 용기 있게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요?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도전해 보지 못해 후회하는 것보단 훨씬 멋진 경험이 될 거에요.”


이 학교는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 그 반면 그러한 학생들이 전교임원으로 선출된 경우는 없었다. 나는 다문화연구학교라는 타이틀에 맞게 다문화 배경의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생활에서 주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홍보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반가운 신청서가 들어왔다. 우리 반 지혜와 주현이가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이다. 두 아이는 모두 예의 바르고 학업에도 열심인 친구들이었다. 다만 지혜는 이혼하신 필리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정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고 주현이는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 또래보다 2살 많지만 한국에 늦게 들어와 한국말이 아주 많이 서툴렀다.

나는 후보자 신청을 한 두 아이들에게 선거 벽보와 영상 제작에 대해 안내했다. 우리반 우현이는 혼자 척척 선거 벽보를 만들고 영상까지 찍어 제출했다. 반면 지혜와 주현이는 벽보 제출 마지막 날까지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벽보 제출 마지막 날 지혜와 주현이에게 4절지 규격의 종이를 준비해 오라고 했다. 방과 후에 종이를 사 온 지혜와 주현이에게 다른 친구들, 동생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보여 주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내세우고 싶은 공약이 무엇인지 정리하도록 했다. 나는 아이들이 정리해 온 공약 중 한글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교정해 준 뒤 벽보를 만들도록 했다.


우여곡절 끝에 벽보 게시가 된 후였다. 선거 벽보를 붙이고 후보자 연설 영상 제작을 위해 만나기로 한 날, 지혜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혜가 선거 걱정 때문에 힘들어요. 우울증 있어요. 선거 안나가요”


어머님께서는 서툰 한국말로 나에게 지혜의 상태를 전해 주셨다.


“그랬군요. 지혜랑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혜는 학교에서는 늘 모범적이고 모두에게 친절한 아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간혹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누워서 우울해 할 때가 있다고 알고 있었다. 보호자는 어머니 뿐인데 어머니는 생계 때문에 늦은 시간 퇴근해서 집에 오셨다. 쌍둥이 여동생을 홀로 챙기며 지내야 하는 일상이 5학년 아이에게 큰 고단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거기에다 코로나로 인해 열심히 다니던 공부방도 잠정적으로 그만 둔 상태라 외부와의 교류도 없으니 지혜의 우울감은 더 컸을 것이다. 지혜는 전교 임원 후보자 신청을 하면서도, 선거 벽보가 게시된 후에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막상 선거 벽보가 붙고 나니 두려움도 커지고 그만큼 자신감도 없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후 지혜에게 전화를 했다. 지혜는 걱정 때문에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너무 마음이 힘들다고. 이번에는 그만하고 싶다고.


“선생님, 죄송해요..”


“지혜야. 니 마음이 힘들다면 여기까지 하자. 이 만큼으로도 대단한 거야. 수고했어^^”


그렇게 지혜의 도전은 중단되었다.




이번엔 주현이다. 주현이는 의외로 당찬 구석이 있었다. 또래보다 2살 많아 성숙한 면도 있었고 한국말이 서툴지만 당당했다. 수업 시간에도 못 쓰는 한국어를 어떻게 해서든 받아 적으며 학업에 최선을 다했다. 한국어를 잘 못 하는데도 손을 들어 발표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영상 제작이나 대본 쓰기는 여전히 어려웠기에 나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주현아,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그걸 간단히 적어와 볼래요?”


주현이가 적어온 말들은 지레짐작으로만 이해 가능했다. 하지만 그 글에는 주현이만의 진솔함이 담겨 있었다. 다른 후보자들의 이상적인 공약들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공약들이었다. 주현이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외우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부분 부분 내용을 확인하면서 영상 녹화를 마무리했다.


전교회장 후보 출마자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상황.


투표 결과 우현이는 60%가량, 주현이는 40%가량의 표를 획득했다. 그렇게 해서 우현이가 전교 회장, 주현이가 6학년 전교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도전만으로도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런데 전교회장으로 선출되었던 우현이가 갑작스럽게 경기도로 전학을 가게 되는 바람에 6학년 전교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던 주현이가 전교 회장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용기 있는 도전이 우리 학교 첫 다문화배경 전교 회장을 만든 것이다.^^


주현이의 전교임원 도전기는 이렇게 하여 ‘전교회장 당선’이라는 기암을 토했다.




6학년, 전교 회장이 된 주현이는 학년의 모범생이자 어려운 친구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선배로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여전히 한국어는 많이 서툴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선생님들께 밝게 인사한다. 코로나로 인해 특별히 자치회 활동을 해 나갈 순 없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주현이는 예전보다 더 멋지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용기란 무엇일까?

<미덕의 보석> 중 하나인 용기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두려움 앞에 당당히 맞서는 것’


누군가가 말했다. 용기란 두려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나는 전교 임원에 도전했다가 중도 포기한 지혜, 전교 임원에 도전해서 전교회장이 된 주현이 둘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용기 있는 도전,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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