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잘하는 것이 있다.

루이젠의 머리땋기

by 손길


출근길 차 안에서부터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해서 교실에 들어가서는 매스꺼움까지 더해져서 식은땀이 났다. 8시 10분,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 다행히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교직원 화장실에 급히 가서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생각했다.


'그냥 조퇴를 쓰고 집에 가서 쉴까.'


하지만 1학년은 전담 수업 시간이 없는 데다가 아이들 통제 문제로 다른 선생님들이 보결 들어오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걸 알기에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수업은 다 하고 가자’ 싶어 교무 선생님께 오후 병조퇴를 말씀드렸다.


그 새 등교한 우리반 아이들이 1층으로 내려와 교무실 부근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선생님, 왜 이제 와요? 어디 있다가 오는 거예요?"


교실에서 늘 1등으로 와 있는 내가 없으니 아이들이 계속 찾아다녔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올라오니 루제인이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이거 내가 했어요 “


세상에, 나는 힘없고 피곤한 와중에도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진심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가지런하게 그것도 혼자서. 무엇보다도 교실에선 착석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루이젠이 오랜 시간 머리땋기가 다 될 때까지 집중했을 거라 생각하니 칭찬해야지 암!


"루이젠이 한 거예요? 최고!! 멋져!!!"


이라크인인 루이젠은 한국말이 아주 서툴다. 2학기에 와서는 아주 간단한 단어로 소통이 되고 있다. 확실히 언어는 어릴 때 빨리 습득된다. 학부모님들은 한국어 수준이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나날이 한국어 해득 능력이 증진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다시 돌아가서, 루이젠. 루이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업 시간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몹시 힘들어하고 늘 몸이 뒤나 옆으로 틀어져 있다. 자주 교실을 이탈하고 수업시간에도 화장실을 자주 가겠다고 한다.

학기 초, 루이젠은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고선 몰래 한국어교실에서 받은 사탕이나 젤리를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몰래 먹는 걸 감추기가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과자 먹은 것을 자주 들켰는데 친구들이 냄새로 확인하고 알려준다던지, 아니면 입술에 음식 색이 고스란히 묻어 마스트에 자국이 남았다던지 했다. 먹고 나면 늘 들켰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는 루이젠에게 화장실은 웬만하면 다른 친구들이 화장실 다녀오는 쉬는 시간에 가는 것이며, 수업시간에 가야 한다면 시간 텀을 두고 가도록 했다.


6월의 어느 날!


"선생님, 어디서 똥 냄새나요~."

"응?"


같은 아랍계 친구들끼리는 서로 간에 끈끈한 유대가 있다. 시리아인 후세인이 손을 들고 나를 찾아와 조용히 속삭였다.


"선생님 루이젠 화장실, 똥!."


그날,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8살이나 되는 아이의 엉덩이를 씻겨 봤다. 키가 큰 편인 루이젠의 몸을 타인인 내가 마음대로 만지는 게 괜찮은 건가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도 복도에서 방역 도우미를 해 주시는 선생님과 함께 루이젠의 몸을 씻기고 옷도 빨고 한국어교실에 비상으로 구비되어 있는 옷을 챙겨 와서 갈아입혔다. 모두가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루이젠의 몸에는 계속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루이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루이젠 아버님은 한국어를 거의 모르시기에 함께 일을 돕는 동료가 대신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루이젠 아버님 동료: 루이젠 학교에서 뭐 먹어요? 설사 자주 해요. 밥 뭐 나와요?

나: 루이젠 학교에서 고기 먹지 마라고 해요. (아랍계) 그런데 몰래 먹을 때 있고 과자 자주 몰래 먹어요.

루이젠 아버님 동료: 고기 먹으면 안 돼요.

나: 네. 말하고 있어요.


루이젠 아버님은 상황을 확인하고 루이젠을 데리러 오셨고, 루이젠은 곧 하교했다.

그 이후로 나는 루이젠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웬만하면 그러라고 한다. 최근에도 반 전체로 매일 하는 키 크기 체조를 하다가 실례를 한 적이 있으므로 대변을 잘 참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며칠 전에도 루이젠은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겠다며 나왔다. 내 눈에 볼록한 주머니가 보였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났다.


아이들: “선생님, 루이젠 주머니에서 소리 나요.”


아이들 귀는 참 밝다.


나 : “과자 가방에 넣고 화장실 다녀오세요.”


눈치껏 말을 알아들은 ‘양갈래 뽀글 머리 루이젠’이 나를 보며 멋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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