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럼화라고 하나요?
편견 없는 시선에 대하여
오랜만에 같은 지역에서 근무했던 동료 교사이자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시골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따라 올해, 도시로 나오게 된 친구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친구가 미안해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이는 영어 안 배워? 6살인데 지금 영어 시작해도 늦은 거야~ 오늘 영어회화센터 상담 대기하다가 드디어 차례 돼서 상담받았거든. 지금부터 꾸준히 계속 사교육에 힘 좀 써야 외국인이나 영어권 문화에도 어색해하지 않는대. 발음도 원어민 수준으로 유지시켜야지~난 엄마가 어릴 때 윤선생 안 시켜준 거 그렇게 원망스럽더라.”
영어가 만국 공용어인 시대.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제각각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우리 학교에는 외국인이 많다. 다만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은 없다. 간혹 러시아어를 사용하시는 부모님들이 기본적인 문장을 영어로 구사해서 의사를 전달하실 때는 있다. 이렇게 외국인이 많은 우리 학교는 왜 한국인 부모님들 사이에서 비선호 학교, 비선호 학군이 된 것일까?
나는 작년 타지에서 이 지역으로 전입했다. 이 지역 토박이인 지인들은 내가 이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들을 하곤 했다.
“원래 00이랑 00초등학교가 이 지역에서 부자들이 가는 학교였지~그런데 요즘은 그 동네 완전 슬럼화 되어서 괜찮은 형편의 한국인들은 다 이사 갔어.”
친정 엄마 역시 이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오셨기에 이 학교의 과거와 현재 모습, 이 동네의 변화과정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계신다.
“옛날엔 이 학교 학생수가 어마어마했는데~00에서 제일 학생수 많은 학교였지.”
슬럼화는 ‘어떤 지역의 주거 환경이 나쁜 상태로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학교 학군은 동남아 계통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학교 주거 환경이 나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 씁쓸하다. 우리가 그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나라에 돈 벌러 온 후진국 외국인 노동자’ 정도로 생각하는 듯해서다.
외국인에도 등급이 있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이 많아져서 그 마을을 떠나고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을 찾아가 돈을 주고 외국어를 배운다.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아졌기 때문에 슬럼화가 되었다는 말 속엔 우리가 선진국과 후진국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진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결혼 전까지 교회 찬양팀에서 반주를 했다. 청년부 시기에는 주일 저녁 시간에 하는 베트남 예배부 반주도 맡아했었다. 대체적으로 이 예배에 참석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육체 노동자들이었는데,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도 함께 예배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령대는 나보다 어린 청년들부터 시작해서 30-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찬양을 인도하는 싱어는 20대 초반의 베트남인 친구 빠야였다. 빠야는 베트남에서 대학교도 다녔으며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장군 집안에서 자랐다. 빠야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행을 택했고 몇 년간 노동자로 살아보고자 한국에 왔다. 잠시만 고생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땐 큰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머물면서 빠야는 CCM 가수라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빠야는 내가 베트남부 반주를 하던 해, 기독교 대학교에 특별 전형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1차 통과 후 2차로 실기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나는 그때 빠야의 반주자 자격으로 함께했다.
“누나, 고마워요~”
나와 빠야는 매주 함께 찬양을 맞춰보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특히나 빠야와 실기시험 연습을 함께 하면서 빠야의 비전에 대해 들으며 탄복했다. 나는 그 당시 베트남부 예배를 함께하며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나 스스로 ‘새로운 편견’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바라보는 아랍계, 난민, 동남아 국적인 소수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습이 그 나라 사람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국적을 막론하고 이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 학부모와의 담백한 일상과 경험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