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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Mar 12. 2022

병상일기 1. 응급실에서

2019년 4.5

응급실은 항상 사람으로 붐빈다. 응급실 내 옆 베트 남학생은 보호자가 여자친구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등학생인 듯 하다. 며칠 전 진료를 받고 뇌염증수치와 뇌사진 촬영, 척수 검사를 받고 갔나 보다. 괜찮았는지 등교를 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고 몰래 나와 여자친구를 만났다가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머리가 너무 아파 119를 불러 응급실로 왔단다. 워낙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데다가 응급실 담당 의사선생님과도 아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다보니 학생이 응급실에 오게 된 일련의 과정들이 다 정리가 된다.


커플은 "여보"하며 서로를 부르는 칭에서 다정함이 뚝뚝 묻어져 나온다.

남학생은 척수 검사를 끝낸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선 무단이탈, 꾀병도 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꾀병처럼 보이진 않는데...

 남학생은 내 옆베드에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두 번을 토하러 화장실에 갔고 서 있으면 머리가 깨질 듯 하다고 했다. 염증수치 또한 1에서 2배로 올라 뇌수막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하는데도 자꾸만 화만 내시는 어머니가 내 입장에선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 진짜 나 척수 검사 다시 받으면서 8번 바늘 찔려서 자살하고 싶으니까 빨리 오세요."


남학생이 마지막 말을 하고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엄마한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라니. 이제는 중년층이 되어버린 나는 마음 속으로 남학생을 혼내는 엄마편이 되었다.


한참 후에야 오신 학생의 어머님은 아들보다 더 낯선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너를 믿을 수가 없다. 그 여자애는 왜 만나러 갔는데? 아프다는 애가 학교는 왜 나온 건데 어?"

하며 화를 내셨고 남편과 통화하는데도

"애가 꾀병 부리는거 어째 아빠랑 똑같냐. 당신이 아프다면서 매번 직장 때려치우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화를 내셨다. 그리곤  혼자 식사를 하러 나가버리셨다. 어머님은 자식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혼자 식사를 하고 오신 후 할리스 커피까지 사 오셔서 한참을 드셨다. 나는 신기한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동했다.


'엄마가 어떻게 저러지'


한편으론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일이지 아픈 몸으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와서도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는 나도 나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하루종일 아파서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는 아들에게 자꾸 구박만 하는 엄마,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을 욕하는 엄마가 나에겐 무척 낯설었다. 물론 나는 남학생의 가정을 모른다. 남편과 아들이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문제들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다만 그 장면만을 바라보는 내 눈엔 매정한 엄마와 불쌍한 아들의 구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서럽다.

응급실이라는 같은 공간에 누워있는 환우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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