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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 쌤 Jan 03. 2020

#1. 선생님, 입원하셔야겠는데요?

의사의 입원 경험기

J 선생님이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 선생님, 입원하셔야겠는데요?


뜬금 입원해야 한다길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더니 아밀레이즈(Amylase: 췌장에서 분비되는 효소) 수치가 높아서 췌장염(이자염)이 의심된단다. 순간 내가 밤 사이에 배의 통증을 줄이려고 했던 노력들이 10여 년 전 학생 때 배웠던 내용과 겹쳐졌다  

새벽 네 시에 배가 아파서 깼다. 자세히는 기억 안나는 꿈에서 둘 중에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순간이 있어 오른쪽을 가리켰는데, 그 순간 눈앞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명치에서 둔중한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깰 정도의 복통은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그래도 좀 강한 위경련이겠지, 어젯밤에 먹었던 계란이 상했던 것일까? 상비약으로 갖고 있던 소화제를 먹고 다시 누웠다. 통증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지만 바로 눕는 것보다 옆으로 기대어 눕는 것이 좀 더 통증이 덜해서 새우처럼 쪼그려 누워서 잠이 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심장박동과 공명하면서 명치의 통증은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아침 7시에 다시 깼다. 심장마비의 통증이 배의 통증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에 나는 좀 더 불안해하며 결심했다. 가자. 응급실로.


너무 아파서 가슴도 제대로 못 폈지만 나름 자존심이 있어서 우리 병원 식구들에게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자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집을 나왔다. 날씨는 다행히 그리 춥지 않았고, 추운 날씨면 시동이 걸릴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을 주던 내 차도 수월하게 움직였다. ‘심장마비라면 운전하다가 죽을 수도 있어.’라는 좀 과장된 생각을 하면서도 복통이 심해 거의 운전대에 몸을 얹고 운전을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119를 부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에 갔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다행히 환자가 없는 상태였고,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전날 밤새 당직이었던 H 선생이 진찰을 보았다. 어제 같이 저녁을 먹었던 그는 어제와 너무도 다른 나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진찰을 시작했다. 후배 뻘인 H 과장이 배를 이곳저곳 누르면서 아프냐고 물어보았는데, 명치의 왼쪽 부분을 누르자 ‘헉’ 소리가 나게 아팠다. 좀 살살 누르지.


심장박동이 뛸 때마다 통증이 생긴다고 하니까 H 선생은 대동맥 질환이 아닐까 걱정된다며 CT를 찍어보는게 어떨지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복통 속에서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진료 보는 의사 선생님이 판단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의사인 나의 의견을 존중해서 물어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개입하면 안 된다고, 내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순간 진료는 산으로 갈 수도 있고 내 앞에 있는 의사의 전문성을 믿고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냥 H 선생님 판단대로 해줘요.



H 선생은 일단 나의 통증을 낮춰줄 약물을 처방하고 혈액검사만 나가기로 했다. CT는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나 보다. 어차피 조영제를 이용한 CT를 찍으려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혈액검사에서 콩팥 기능을 보는 수치가 나와야 찍을 수 있을 터.


전날 밤 당직을 섰던 H 선생은 J 선생과 교대를 하면서 커튼 사이로 나에게 쾌유를 빈다며 인사를 하고 퇴근했고, 곧바로 들어온 J 선생이 췌장염 진단을 알려주었다.


- 아직 많이 아프시죠? 통증이 심하실 테니까 모르핀을 좀 드릴게요.

- 모르핀부터 줘요?

- 췌장염은 통증이 심해서 응급실에서 처음부터 많이들 줍니다.


모르핀을 맞고 나니 통증이 삼분지 일 정도로 가라앉았다. 전쟁영화에서나 보고, 암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처방했던 모르핀을 직접 내가 맞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통효과가 강력한 것 같았다.


CT를 찍고 나니 J 선생은 췌장 주변에 액체가 모여있는 모습이 관찰되면서 전형적인 췌장염 소견이고 3,4 단계라고, 내과 과장인 C 선생에게 입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3, 4 단계라면 높은 단계 아니야? 물론 J 도 내가 의사니까 이야기했겠지만 비의료인이 만약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얼마나 겁이 덜컥 들었을까. 나도 살짝 겁나는데.


췌장염은 꽤나 위험한 질환이다. 췌장에서 나오는 아밀레이즈와 라이페이즈라는 효소는 소화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이게 너무 많이 나오면 췌장 자신과 주변을 녹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급성으로 생길 경우 20퍼센트 정도 사망(...) 확률이 있다고 한다.  합병증도 흔한데, 많은 경우 수술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거라 골치가 아프다.


병실에 올라가서 좀 기다리니 C 선생님이 와서 “많이 아프셨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역시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최고의 의사군! 하지만 사람 좋은 C 선생은 나에게 고통 또한 안겨주었다. “췌장염 아시죠? 다 나을 때까지 완전 금식입니다. 물 한 모금도 안돼요”


이렇게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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