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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 Sep 29. 2021

백수일기-4

육아와 가사 사이

육아 (育兒) - 어린아이를 기름

가사 (家事) - 살림살이에 관한 일


(바깥)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 많은 이들은 육아휴직이냐고 물었다.

제도적으로 '육아휴직'이라는 명칭이 존재하기에 대부분에게 익숙한 표현이지만

난 육아휴직은 아니라고 말했다.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고

육아를 목적으로 휴직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이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마음먹었던 휴직이기도 하기에 그냥 쉬는 거라도 답하곤 했다.

그런데 이 말의 무게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퇴사 직후 나의 아침은 5시 정도에 시작되었다.

아이가 5시 전후에 수유를 필요로 했기에 분유를 타 수유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6시경 헬스장에 도착하면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하고

7시 30분경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논문을 썼다.

논문 작업은 4시 정도까지 하고 귀가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육아를 함께했다. 아내가 출근하지 않았을 때의 일과였다.


아내가 출근을 하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논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의 낮잠 + 밤잠 시간이 전부였다.

키보드의 딱딱 소리마저도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뒤척이지 않고 1시간 30분 정도라도 통잠을 자는 날이면 너무나 고마웠다.


논문을 마치고 난 뒤의 일상은 더더 더욱 달라졌다.

논문을 병행할 때 나의 (집안) 일은 아이를 돌보는 것- 육아에 한정되었다.

다행히 아내가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등등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40대의 초보 엄빠였던 우리는 둘이 합쳐야 아이 하나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의 논문이 모두 끝난 뒤

나에게는 감당해야 할 (집안) 일이 급증했다.


요즘 내 하루를 보면,

기상 - 아이 아침 준비와 아침 먹이기 - 나와 아내의 아침 준비 - 아침 식사 -

아내 배웅 - 설거지 - 청소기 - 아이 등원 준비(씻기고, 치카하고, 옷 입고, 가방 챙기고, 신발 신고 집 나서기)

- 등원 완료 - 자유시간 - 장보기 - 하원 - 저녁 준비 - 저녁 먹기 - 설거지 -

후식 먹기 - 아이 목욕 - 엄마와 아이의 취침 - 나는 러닝 - 샤워 - 취침 정도이다.


만약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 중 누군가 육아휴직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남편이라면

육아휴직이 아닌 가사휴직의 정체성을 갖는 것을 권한다.  

육아휴직이라 해서 아이'만' 돌보는 걸 택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지켜지기 어렵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만' 보는 삶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더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야 보람찬 마음으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을테다..



덧, 혹 우리 부부처럼 둘 간의 위생기준에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보다 높은 수준의 파트너가 마음의 여유를 갖길 바란다.

(어느 정도) 원하는 수준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난 8개월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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