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약 중간약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달 남짓 지나자 감기가 찾아왔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 통과의례로 경험하게 된다는 감기세례
아픈 아이를 보며 속상해서
어디에서, 누구에게 옮은 것인지 맘으로만 쌍심지 키듯 레이더를 키고 있다가
결국 내 아이도, 다른 아이도
서로 옮고 옮기고 나눠주고 받아주고 다시주는
바이러스공동체라는 것을 깨닫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달남짓
그렇게 아이는 거의 두달을 병원을 다녀야만했다.
처음에는 아기때부터 가던 동네 소아과를 갔다.
소아과 선생님은 자연스레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약도 잘 처방해주시지 않았다.
인위적 약보다는 아이의 자가면역력 강화라는 취지에 감동 + 감사하며 다녔지만
콧물과 기침이 시작된 아이에게 정말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찾아본 곳이 이비인후과
다행히 단지 내 상가에 있는 이비인후과는 잘본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5분단위로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이비인후과!
평균 2일 정도로 진료를 보면서 병의 진로를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병행하는 곳이었다.
칙칙~ 하고 쏘아대는 약,
내시경 카메라로 귓속, 콧속, 목안을 훑어보며 진단하는 모습은
정말 장인의 솜씨였다.
하지만 2-3일에 한번씩 찾아가는 진료가
3주 이상 반복되면서
이게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가늘고 길게 오래가는 것이 최선일까?
다시금 찾아본 곳은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다른 소아과였다.
이 소아과 역시 맘카페에서는 유명했는데,
최고의 평은 강한 약으로 감기를 확 휘어잡는 카리스마였다.
대기가 두려워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일찍이 찾아갔다.
역시 능숙한 솜씨로 귀, 코, 목을 살핀 선생님의 처방전은
지금까지 중에 가장 길었다.
기존 다니던 곳의 2배 정도되는 약
그리고 무려 일주일치 약을 한방에 처방..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약봉투를 바라보며
이게 정말 최선일까 하는 고민이 머리 가득 채워졌다.
약에 익숙치 않던 아이는 약을 먹고 약간 헤롱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일주일치 약을 다 먹기도 전에
콧물이 멈추었다.
한달 넘게 지속된 감기의 끝물에 올라탄 것인지
강한 약의 효과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기침, 콧물, 열이 나면 어린이집 등원조차 완벽히 거부되는 코시국에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간절히 외치는 아이를 위해
그리고 어린이집 가있는 동안 그나마 무언가 할 수 있는 나의 욕구는
다음 번에 아플 듯하면 찾아갈 병원은
이미 마음 속에 저장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몇해 전 떠들석했던 안아키 사건이 떠올랐다.
약을 안쓰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
너무나 비과학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맹신하였다는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아이에게 약을 안쓰려고 마음 먹는다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강한약에서 조금이나마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걸 살포시 경험해본 후,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민간요법을 지지하거나 응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는
과학적이고 검증가능한 근거evidence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약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의 회복에 맞출 수 있는
사회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되기 위해 뭔가를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