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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 Dec 12. 2021

백수일기-7

코 선생님, 청소 선생님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이가 마주하는 환경도 나날이 확장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접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진다.

물론 그 모든 사람들과 애착관계를 맺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세계가 커지는 만큼 등장인물들도 다양해진다.


새로운 등장인물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에게 소개하는 방식, 특히 호칭이 신경 쓰였다.

직업의 귀천이나 성고정관념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상반되게

호칭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일반적 호칭을 벗어날 경우 

부모가 아닌 타인과의 대화에서 불편함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맘도 생겼다.


등장인물에 따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첫 번째 등장인물은 아침에 아파트를 청소해주시는 청소노동자 분들이 있다.

정확한 요일은 알지 못하지만 아침에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현관, 복도 등을 청소하고 계시는 분들과 마주치게 된다.

먼저 인사를 건네주실 때도 있고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할 때도 있지만

처음 아이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 때 순간적으로 멈칫하였다.

나도 모르게 '청소 아주머니'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성급히 주어 담으며 혼자 난감해했다.


그리고 만난 두 번째 등장인물은 재활용 분리수거를 위해 아파트를 주 1회 방문하는 트럭이다.

소리에 민감한 아이는 이른 아침 재활용 수거 차량이 재활용품을 담는 소리를 들으면

베란다로 쫓아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는 '저거', '저거'라고 했다.

'응, 분리수거 오셨지'라고 대답을 했지만

역시나 순간적으로 '분리수거 아저씨'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음을 깨달았다.

이토록 성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표현이라니...  

스스로를 반성하며 어떻게 호칭을 알려줄까 고민했다.

적절한 호칭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조금 지났고..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소아과를 갔지만 

콧물이 흐르고 목이 부어서 이비인후과에 가게 되었다.

이틀에 한 번씩 이비인후과를 다니면서 

아이에게 병원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소아과만 다니던 터라 병원=소아과였는데, 고민이 되었다.

이비인후과는 너무 어려운 터라 '다른 병원 가자'라는 식의 표현도 사용했지만... 별로 였다.

그러다 어쩌다 자연스레 이비인후과를 '코 선생님'만나러 가는 거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오, 그러고 나서 자연스레 호칭에 대한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청소 선생님, 분리수거 선생님, 경비 선생님.. 등등.

그러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왜 병원에 가서야 '코 선생님'이란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일지...

직업의 귀천, 성고정관념..

인간존엄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해오던 이것들이 

여전히 내안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뼈를 맞는 아픔이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끊임없이 나의 삶의 흔적들을 반추하게 한다.

앎이 삶이 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되새김질하고 반성하고 되뇌이며 다시 차근차근 시작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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