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 하는 아빠
아이가 태어나고 26개월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바깥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경험한 평생의 삶에서 바깥일을 매일매일 하는 아빠는 거의 처음 경험하게 되는 터라 나름 긴장했다.
사실 함께하는 시간을 더 유지하고 싶어
주 4일 일할 수 있는 직장 혹은 직업을 갖고자 구상하였으나
아내의 직장+학업으로 인하여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주 5일 10시-7시 근무, 내가 아이의 등원을 맡고 하원은 아내가 맡는 일정표가 짜였다.
그렇지만 바깥일을 시작한 뒤에도 나의 하루는 심플하다.
대다수의 양육자들이 그러하겠지만...
6시 50분 즈음 일어나서 씻고 식구들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 및 등원 준비를 한다.
9시 정각에 어린이집에 도착해 등원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
그리고 19시에 회사를 나서 집에 도착하고, 아내가 준비해주는 저녁을 먹고 나서
1시간 정도 아이와 책도 읽고, 블록도 갖고 놀고, 신체놀이도 하고...
코 잘 시간이 되면 아이 샤워를 돕고 나서 찐하게 취침 인사를 한다.
9시나 9시 30분, 아내가 아이와 누워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렇게 하루를 정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난 뒤의 시간이다.
이토록 단순한 하루를 두어 달 보내고 나니
아이는 내가 퇴근하고 난 뒤의 1시간에 점점 더 의미를 부여한다.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자유이용권 같았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시간제 이용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1시간 동안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하루 종일 함께하면서 하루에 2-30권의 책을 읽곤 했는데,
그걸 채우고자 하는지, 오늘은 20여 권의 책을 한자리에서 읽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 줄어들며 양질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민한다.
"좋은 아빠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내가 아빠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가졌던 소망 중 하나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했다.
나도 그러했지만 많은 이들이 좋은 아빠=성공한 아빠=돈 많이 버는 아빠로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내 또래의 많은 아빠들은 성장하면서 좋은 아빠를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다수가 경험한 좋은 아빠라고 하는 건,
산타할아버지처럼, 어쩌다 한 번씩 이벤트나 선물로 만나는 아빠
말이나 스킨십으로 교감을 나누는 관계보다는
말 안 해도 알아야 하는 무언의 관계를 지향하는 무뚝뚝한 아빠
혹은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아빠 정도였다.
삼십 대에 결혼하고 사십 대에 아빠가 되었다.
아동에 대해 공부하고, 아동상담과 아동인권에 대한 일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아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
아동권리를 설명할 때 3P를 이야기한다.
Provision(제공), Protection(보호), Participation(참여).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때 아동권리기반이라 이야기한다.
좋은 아빠도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아빠가 좋은 아빠라 생각했다면,
이제는 아이의 지금을 지켜줄 수 있고, 아이가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며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함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그 표현이 긍정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그런 양육자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얼마 전 티브이에서 개그맨 오지헌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가 활동을 중단한 이유..
"뭔가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거나 돈을 위해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영혼을 아이에게 온전히 쏟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바깥 일을 시작하고, 미친 듯이 달려나가듯 일 하지 않기를 다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