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았던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궁금한 건 답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내가 모르는 걸 배우고 알게 되는 과정. 내가 못하는 걸 배우고 잘 하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웠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시는 30대 초반의 여선생님 이었다. 당시 사범 대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편을 잡은 지 얼마 안된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이라도 원어민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건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외국에서 산 경험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원어민과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분 이었다.
중2는 질풍노도 시기의 최정점에 있다. 처음 부임했을 때 그렇게 여리던 선생님이 15살의 까불이 학생들과 부딪히며 조금씩 변해 갔다. 사랑의 매를 들기 시작했고 큰소리를 내다보니 성대가 나가기도 했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만큼 많았고 제자들이 삐뚤어지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선생님의 그 사랑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알고 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나는
당시의 선생님이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했는지
한번은 무단 결석을 하던 반 친구가 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선생님께서 엄하게 사랑의 매를 들었다. 그 친구는 이미 어둠의 세계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주먹이었는데 그 세계에서 빼내려고 선생님은 지독히도 노력했다. 그날 매를 드시던 선생님은 어느 순간 울음을 터뜨렸고 앉아 있던 우리들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 날 친구에게 선생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기 암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준 친구와 다음 날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가지 못하고 그 다음날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병문안을 가는데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친구가 혼잣말로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친구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선생님 병실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래 병문안을 가기로 한 그날 왔다면 마지막으로 선생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미루지 말고 바로 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와 죄송함. 그리고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것.
뭔가를 생각했다면 미루지 말고 바로 해야 한다는 것.
매일 오는 다음 날이 누군가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때부터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하게 되었다. 미루다가 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뭔가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시작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있었지만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았다는 생각에 후회는 없었다.
헬스,걷기,달리기,등산,수영,프리다이빙,스쿠버다이빙,책 읽기,영화,색소폰,음주,커피,자전거,테니스,살사댄스 등.
어떤 것은 평생의 취미가 되었고 어떤 것은 잠시 발만 담갔다가 뺐고 어떤 것은 배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그걸 할 때 즐거웠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하나씩 늘어갈 때의 기쁨. 그건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