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새벽 출근길에 느끼는 행복

소설

by 봉봉주세용

병원에 누워 5일동안 휴식을 취하며 보낸 시간이 김민수씨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그는 6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것이다.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휴가를 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민정씨와 결혼을 하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도 민수씨는 틈틈이 회사 일을 체크했다. 여행을 하다가 잠깐씩 카페에 들러 노트북으로 회사 메일을 체크하고 업무 진행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 했다. 반면 민정씨는 신혼여행 기간에 회사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휴가 기간에는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원칙이었다. 그녀는 신혼여행 중에도 업무를 놓지 못하는 민수씨에게 짜증을 냈다.


민수씨는 그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노트북을 끄지 못했다.


아마 그런 민수씨의 태도가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하는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민수씨는 병원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회사 업무는 전혀 들여다 보지 않았다. 그 동안 왜 그렇게 아둥바둥 거리며 살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쉴 때도, 휴가 때도, 주말에도 회사 일이 항상 머릿속에 가득했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회사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온전히 일상을 즐길 수 없었다. 아마 그런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민수씨 몸에 쌓였고 돌발성 난청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병실에서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예전에 즐겨읽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일이 아닌 다른 것에서 그런 몰입감을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퇴원을 하면 규칙적으로 책을 읽고 운동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만에 회사로 출근하는 민수씨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새벽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 좋았다. 지하철에서 나와 회사까지 큰 길로 걸어갈 때 바쁘게 이동하는 많은 직장인들을 보며 전장으로 나가는 동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의자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민수씨는 이런 회사 분위기가 그리웠던 것이다. 예전에는 일을 할 때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부담감이 컸지만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리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확인하고 그 동안의 프로젝트 진행사항을 체크했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업무는 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5일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누수없이 잘 처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팀장 대행을 부탁했던 오진수차장의 깔끔한 일처리가 고마웠다.


민수씨는 팀원들이 모두 출근하고 오랜만에 팀 회의를 진행했다. 팀원들이 진행하고 있었던 업무 현황을 확인하고 리뷰했다. 그리고 향 후 진행해야 할 업무 과제를 팀원들에게 분배했다. 회의는 짧게 끝났다.


기존에 회의를 할 때보다 시간이 1/3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팀원들은 평소보다 짧은 회의 시간에 살짝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간단히 회의를 마치고 팀원들을 데리고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그는 팀원들에게 모닝커피와 마카롱을 하나씩 사주고 가볍게 근황토크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항상 딱딱한 회의에 익숙해져 있었던 팀원들이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팀원들에게 민수씨는 어려운 팀장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워낙 열심히 하는 팀장이라 욕을 할 수도 없었다.


팀이 구성되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민수씨는 업무 얘기 외에 사적인 얘기는 팀원들과 하지 않았다. 항상 딱딱한 얼굴로 업무 얘기만 하는 그였는데 퇴원 후에는 뭔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얼굴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민수씨는 팀원들과 카페에서 얘기를 하며 그 동안 팀원들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민수씨는 앞으로 회의 시간을 짧게 하고 대신 티타임을 해겠다고 생각했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주말에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예전에 민수씨는 등산을 좋아했는데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등산을 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할 때 땀을 흘리고 나서 느껴지는 상쾌함과 정상에 올라가서 멀리있는 풍경을 봤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고 싶었다. 민정씨와 손을 잡고 등산길 초입의 돌길을 걸을 때는 수월했다.


돌길을 거치고 계단을 올라 깔딱 고개를 넘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오히려 민정씨는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민수씨는 숨이 차서 겨우 겨우 걸음을 옮겼다. 그런 민수씨를 보며 민정씨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연주대 가는 길에 들어섰을 때는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능선을 따라 기상레이더와 연주대가 보였는데 미끄러 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산 정상에 도착해서 둘은 한참동안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민수씨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몸 속에 있는 나쁜 공기를 밀어내고 신선한 공기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는 귀속에서 뭔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귀속에서 물총으로 물을 쏘는 것 같았다. 한번, 두번, 세번. 귀가 시원해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민수씨는 뭔가가 귓속에서 일어났음을 인지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밑을 내려다 보니 멀리서 산을 올라오는 한 무리의 일행이 보였다. 상당히 먼 거리였는데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고 대화 내용이 또렷하게 들렸다. 50대 중후반의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는데 아주머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아후. 힘들어. 관악산이 이렇게 힘든 산인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원래 산 이름에 악이 들어가면 힘든 산이라우. 그걸 이제 알았어?”


“그걸 알았으면 안 왔다니까. 아유 정상까지 언제 올라가.”


“이제 10분이면 다 올라가. 조금만 참아요.”


아저씨는 힘들어하는 아주머니 손을 잡고 달래며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민수씨도 힘들게 올라왔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에 공감이 되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옆에 서 있던 민정씨는 갑자기 미소짓는 그를 보고 왜 웃냐고 물었다. 그때 민수씨는 정신이 들었다.


민정씨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렇게 멀리있는 사람이 보이고 대화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는 혹시나 해서 민정씨에게 물어봤다.


“민정아. 저기 아저씨랑 아주머니 올라오는 거 보여?”


“어디? 저기 저 멀리? 아니. 이렇게 거리가 먼데 어떻게 보여?”


민정씨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얘기했다.


“저기 멀리서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올라오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힘들어 하니까 아저씨가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하면서 올라오고 있어. 최소한 40분은 더 올라와야 할텐데.”


민수씨가 웃으면서 얘기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저기 어디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게 어떻게 들려?”


민정씨는 민수씨가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민수씨도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얘기했다. 뭔가 들리긴 들렸는데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관악산은 올라갈 때도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것은 더 힘들었다. 민수씨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 그를 보고 민정씨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체 운동 꾸준히 하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중간 중간 쉬어가며 하산을 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민수씨는 산 정상에서 보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산 정상에서 민수씨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그들은 대화를 이어가며 민수씨와 민정씨를 앞질러서 걸어갔다.


“민정아. 지금 지나가신 분들 얘기하는 거 들려?”


“응 들리지. 뭔가 재미있는 얘기하시나봐. 웃음이 끊이질 않네.”


“아까 정상에서 내가 멀리 있는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보인다고 했잖아. 기억나?”


“기억나지. 저 멀리있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하면서 올라오고 있다고 얘기했잖아.”


“방금 지나간 분들이 그 사람들이야. 내가 분명 정상에서 그분들을 봤거든. 얘기하는 것도 들었고. 방금 지나갈 때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 목소리가 같았어.”


민수씨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엥? 무슨 소리야 오빠. 계속 장난칠거야?”


민정씨는 민수씨가 너무 진지하게 얘기해서 어이가 없었다.


“아니야. 진짠데. 내가 잘못 보고 들은 줄 알았는데 방금 지나갈 때 보니까 내가 정상에서 봤던 얼굴이랑 같았어. 목소리도 내가 들었던 목소리고.”


민수씨는 민정씨가 믿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에이 말도 안돼. 오빠 장난 그만하고 얼른 내려갑시다. 나 배고파. 내려가서 우리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자.”


민정씨는 민수씨가 계속 장난을 한다고 생각했다.


“진짠데. 알았어. 그럼 얼른 내려가서 맛있는 거 먹자. 아이구 힘들다.”


민수씨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민정씨에게 더 얘기해 봤자 믿을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찝찝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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