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민수씨는 왼쪽 팔에 링겔을 꽂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일주일 동안의 과로와 주말에 못 잔 잠을 한꺼번에 자는 것처럼 보였다. 민정씨는 침대 옆에 앉아서 잠에 빠져있는 민수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민수씨를 처음 만났을 때는 편의점에서였다. 그때 민정씨는 본사 신입사원으로 편의점에 파견되어 점포 관리를 하고 있었고 민수씨는 저녁 알바생이었다.
유독 그가 근무할 때 편의점에 손님이 많았는데 학생들과 웃으며 농담하는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당시 그는 통통한 얼굴에 웃음끼가 가득했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일하던 민수씨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하나 궁금해 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 민정씨도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호감을 갖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따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최우수 알바생 상을 받았을 때 그 핑계로 저녁을 먹자고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때 통통했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날카로운 인상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전체적으로 살이 빠지면서 얼굴 살도 많이 빠졌다. 예전에는 둥글고 웃는 인상이었다면 지금은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무거운 얼굴이었다.
여전히 잘 웃었지만 웃지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무서운 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민정씨는 매일 보는 남편의 얼굴인데 문득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와 지금의 그는 같은 사람일까? 민정씨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정씨가 민수씨를 보고 있을 때 그는 깊은 꿈속에 있었다. 낮에 찜질방에서 꾸던 꿈과 내용이 이어지는 꿈을 꾸고 있었다. 피구 게임을 하다가 공을 맞고 쓰러진 그는 너무 아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귀가 아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같이 피구 게임을 하던 친구들은 그런 그를 둥그렇게 둘러싸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팔짱을 끼고 지켜봤고 어떤 친구는 웃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다른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팔을 내밀어 일으켜주지 않았다.
심판을 보던 담임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일어나려고 온 몸에 힘을 줬다. 겨우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휘청이며 다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그에게 달려가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가지 못하게 제지를 했다.
어느 순간 친구들은 똑같이 팔짱을 끼고 무뚝뚝한 얼굴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민수씨는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보다가 와락 눈물이 났다. 아무도 그의 편이 없었다. 몸서리 치게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학원에 가기 위해 새벽에 고시원을 나섰는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컴컴한 새벽이라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한번씩 칼바람이 불어 볼을 베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 째 눈이 녹지 않아 빙판이 된 길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앞으로 가고 있다. 골목길을 가다보니 누군가 주택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잠들어 있다.
그 주위에 토사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 날 과음을 하고 토하다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면 안될 것 같아 그는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려고 했다. 그 사람에게 가만히 다가가서 어깨를 잡았는데 잠들어 있던 사람은 민수씨 자신이었다.
경찰 공무원 마지막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창 술을 마시며 보낼 때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계단에 앉아 잠들어 있는 자신을 깨웠다. 잠을 자던 민수씨는 잠이 깨어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들어보았다.
그는 “추워. 너무 추워.” 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 순간 민수씨는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 팔에는 링겔이 꽂혀있었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민수씨는 한동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가 그는 아침에 임원회의에서 프로젝트 내용을 발표한 것과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현재의 상황을 이해했다.
꿈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가 꿈속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오빠 일어났네? 잘 때 계속 뒤척이면서 표정이 찡그려지던데. 악몽을 꿨나봐.”
민수씨가 눈을 뜬 것을 본 민정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얘기했다.
“어 민정아. 언제왔어?”
“오빠 전화받고 바로 왔지. 입원 수속 다했어. 아까 의사선생님이랑 얘기했는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입원해야 된다고 하던데. 상황봐서 상태가 좋아지면 좀 더 일찍 퇴원해도 된대.
예전에 내 친구도 돌발성 난청 걸린적 있어서 어떤 병인 지 알어. 절대 휴식 취해야 되고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는 거야. 알지?”
“응. 나도 의사선생님한테 얘기 들었어. 이렇게 귀가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프로젝트 준비하면서 신경 많이 써서 그런가봐.”
민수씨가 얘기했다.
“그런거 같아 오빠. 주말에 잠 거의 안 잤잖아. 일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무리했어. 일보다는 건강이 중요해요 김팀장님.”
“그래 알어 민정아. 걱정끼쳐서 미안해.”
민수씨는 웃으며 얘기했다.
“아까 오빠 잠잘 때 보니까 얼굴에 살이 없더라구. 예전에 편의점에서 알바할 때는 통통했는데. 그때랑 비교했을 때 얼굴이 많이 변한 것 같더라. 그 동안 생각 못했는데 아까 문득 깨달았어.”
“응. 나도 아까 사우나에서 거울보다가 놀랬어. 왜 이렇게 내 얼굴이 낯설던지. 내가 아닌 거 같더라고. 살도 빠지긴 했지만 일하면서 얼굴이 너무 굳은 거 같애. 그런 얼굴로 하루 종일 일하니까. 이제부터는 일부러라도 좀 웃으면서 지내야겠어.”
민수씨가 진지하게 얘기했다.
“맞아 오빠.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자주 웃었는데 요즘 웃는 모습을 잘 못 본거 같애. 우리 앞으로는 좀 더 웃으면서 지내 보자구요, 김팀장님.”
그녀는 민수씨의 손을 잡고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민수씨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갑작스럽게 입원하게 된 사정을 얘기했다. 그리고 당분간 같은 팀의 오진수차장에게 팀장 대행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차장은 민수씨보다 7년 선배였는데 똑똑하고 팀원들을 잘 배려했다. 민수씨가 팀장이 안 되었다면 오차장이 팀장이 되었을 것이다.
오차장이 팀장이고 민수씨가 팀원인 것이 더 자연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민수씨를 팀장으로 선택했고 오차장은 큰 불만없이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오차장에게 민수씨는 항상 고마움을 느꼈다.
오차장은 본인이 한참 선배인데도 티를 내지 않고 민수씨를 팀장으로서 존중해 주고 따라줬다. 그런 오차장도 민수씨에게 쉬어가면서 일을 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오차장의 말이 민수씨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실력으로 조직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최연소 팀장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수씨는 본인 스스로 더 압박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민수씨였기에 병원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었다. 민수씨는 5일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저녁마다 회사 동료들이 찾아왔다.
부산에 있는 성욱씨도 KTX를 타고 병문안을 왔다. 성욱씨는 최근에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회사를 차렸다. 낡은 주택과 토지를 매입해서 새로 건물을 올리고 파는 비즈니스를 했는데 수익이 꽤 좋다고 했다.
수원에서 호프집을 하던 준기씨도 민수씨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왔다. 준기씨는 호프집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호프집을 운영하며 꾸준히 연극에 출연하던 준기씨는 어느 날 그의 연극을 좋게 본 작가의 소개로 유명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 드라마는 케이블에서 공전의 히트 드라마가 되었는데 그 후 준기씨는 꾸준히 영화, 드라마에 캐스팅 되고 있었다.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스케줄이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호프집을 운영할 수 없게 되어 동생에게 호프집 운영을 맡기고 준기씨는 연기자 생활만 하고 있었다.
민수씨는 동료들과 친구들의 방문에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경과가 좋아 5일만에 돌발성 난청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