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민수씨는 최근 팀장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3개월 동안 민수씨가 속한 TF(Task Force)에서 만든 제안이 최종 승인이 나서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임원회의에서 민수씨가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TF에서 제안한 내용은 경쟁이 치열해 지는 편의점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걸 실행하고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시스템이 제대로 안착되면 편의점 오퍼레이션 업무가 간소화 되고 최저임금 관련 리스크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그리고 포화 상태인 편의점 시장에서 매출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TF에서 제안한 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정식으로 팀을 조직했는데 민수씨는 그 팀의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민수씨의 팀장 발령은 조직에 충격을 줬다.
팀원이 8명이었는데 민수씨보다 후배는 2명 밖에 없었다. 민수씨의 팀장 발령은 역대 최연소 팀장 타이틀이었고 위계 질서가 엄격한 회사 조직에서 후배가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민수씨는 팀장으로 발령난 후 인사부장과 면담을 했다. 인사부장은 파격적인 인사발령 배경을 설명해 줬다. 프로젝트에 대한 임원진의 기대, 특히 사장님의 입김이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긴장감을 주기 위해 그런 인사이동이 한번씩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첫 시범케이스인 민수씨가 팀장으로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고 했다. 민수씨는 조직에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게 되었다. 민수씨 팀원들은 민수씨를 잘 따라주었다. 팀의 리더로 인정을 해 줬고 민수씨는 그 만큼 더 열심히 했다.
그가 회사에서 인정받는 만큼 주위에서의 질투가 따랐다.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얼마나 잘 되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민수씨와 그의 팀을 지켜봤다. 그도 회사 내부의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 성과를 내고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팀이 조직되고 석달이 지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민수씨는 오전 8시에 진행되는 임원회의에 참석해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발표했다. 그의 발표 후 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압박이 이어졌다. 어떤 이는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얘기했고 어떤 이는 진행되고 있는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사장은 좀 더 분발해 달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민수씨와 그의 팀원들은 그날의 발표 준비를 위해 일주일 동안 자료를 준비했다. 대부분 팀원들이 그 기간에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했고 민수씨는 주말 내내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발표 준비를 했다.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민수씨는 갑자기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현기증이 나며 앞이 뿌옇게 보였다. 그는 잠시 회의실에 앉아 현기증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 경험하는 증상과 느낌에 그는 당황했다. 자료를 준비하느라 너무 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무실에 돌아와 회의 내용을 팀원들에게 전달해줬다. 고생한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얘기해 주고 민수씨는 그날 오후 반휴를 쓰기로 했다.
민수씨는 회사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갔다. 가끔 야근을 할 때 들르는 찜질방으로 시설은 낡았지만 깔끔해서 잠깐 눈을 붙이기에 적당했다. 그는 오랜만에 사우나를 하고 바로 취침실에 가서 잠을 잤다. 그는 바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고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는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체육시간이었는데 남자, 여자 섞여서 피구게임을 하고 있었다. 민수씨 편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아웃이 되어 금 밖으로 나가 있었고 민수씨만 금 안에서 공을 피하고 있었다. 상대편 친구들은 빠르게 공을 돌리며 한번씩 민수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초등학생이 던지는 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민수씨가 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어서 겨우 겨우 피하고 있었다. 민수씨 편에 있던 친구들은 금 밖에서 웃으며 다른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를 응원해 주는 친구는 없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뛰며 공을 피할 뿐이었다.
문득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공을 맞고 게임에서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피구게임이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민수씨는 더 이상 공을 피하지 않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상대편에 있던 여자 애가 웃으며 공을 던졌다. 살살 던진 공이라 민수씨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날아오던 공에 갑자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였다. 동그랗던 공은 찌그러지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왔고 불꽃과 함께 공은 그의 옆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그 순간 그는 잠에서 깼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했고 피구공으로 옆머리를 맞을 때 귀가 터지는 느낌이 났다.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실제로 귀가 멍했다.
그는 수면실에서 내려와 차가운 물을 마셨다. 작은 종이컵에 한잔, 두잔, 세잔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결국 물을 다섯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매일 보는 얼굴인데 거울속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땀에 젖은 찜질방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수면실로 올라가 누웠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는데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귀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는 옷을 입고 시간을 봤다. 아직 오후 2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꽤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았는데 1시간도 자지 않은 것이다.
바로 집에 갈까하다가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특별히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꿈에서 공을 맞았을 때 느껴졌던 귀 통증이 신경쓰였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50대 초반의 배우 신구 아저씨 같은 느낌 이었다. 키가 작고 얼굴에 장난끼가 가득했는데 이런저런 말을 끊임없이 했다.
그는 회사 동료의 소개로 그 병원을 알게 되었는데 의사가 말은 많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의사는 민수씨의 증상을 듣고 귀 현미경 검사 및 청력검사를 했다. 그리고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평소에 장난끼가 많은 의사인데 그날은 진지하게 민수씨에게 얘기했다.
최대한 빨리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입원해야 한다고.
심한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청력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민수씨는 고막 내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잠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바로 성북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린 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의사는 몇 가지 검사 후 동일하게 돌발성 난청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입원을 하라고 했다. 돌발성 난청은 갑자기 청각 신경에 마비가 오는 증상을 말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사는 돌발성 난청 환자 중 1/3은 불완전하게 회복이 되고 1/3은 청력을 잃게 된다고 얘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입원해서 치료에 집중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된다고 했다.
민정씨는 민수씨 전화를 받고 입원에 필요한 서류와 간단히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을 챙겨서 바로 병원으로 왔다. 민정씨는 입원수속을 마무리 하고 민수씨가 있는 병실로 갔다. 민수씨는 이미 입원복으로 갈아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친구가 돌발성 난청에 걸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 같은 과 친구가 돌발성 난청에 걸렸는데 그때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아 그 친구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민수씨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민정씨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