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유리대리를 만난 날 저녁.
고민정씨는 김민수씨에게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조성기과장 일을 물어봤다.
“오빠 요즘 조성기과장 일로 회사에서 난리였다며?”
“아. 그거 어떻게 알았어? 회사에서 꽤나 시끄러웠지.”
“근데 왜 나한테 얘기 안 해줬어?”
“좋은 일도 아니고. 그냥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찝찝한 내용이라서.”
“그랬구나. 오늘 유리가 우리 동네에 왔었거든.”
“강유리대리? 아. 그래서 알게 됐구나?”
“응. 오랜만에 유리랑 드라이브하고 점심도 먹고 회사 소식도 들었어.”
“오랜만에 강대리 만나서 즐거웠겠네? 강대리가 너 많이 따랐잖아.”
“아. 오빠도 알고 있었어?”
“그럼. 왜 몰라. 너 그만두고나서 여직원들이 너 많이 그리워했어.”
“오늘 유리도 똑같은 얘기 하던데. 난 그 동안 전혀 몰랐어. 그래도 그리워해줬다니까 고맙네.”
“니가 회사 그만두고 나서 일부러 회사 얘기 안 했어. 생각나고 힘들어 할까봐.”
“응. 이해해. 고마워 오빠.”
민정씨는 민수씨와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녀가 퇴사하고 민수씨는 회사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민정씨도 민수씨에게 회사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
“오빠는 조성기과장 일 어떻게 생각해? 난 아까 유리한테 그 얘기 듣고 놀랬어. 어떻게 인턴한테 접근해서 그런 짓을 해?”
“음. 나도 처음에 그 얘기가 게시판에 올라왔을 때 많이 놀랬어. 근데 한쪽 편 얘기만 듣고는 모르는 거잖아. 개인적으로 조성기과장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인턴이 올린 글이 진실인지 아닌 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조과장은 인턴이 먼저 밥 먹자고 하고 정직원 될 팁 좀 알려달라고 해서 몇 번 만난 게 전부라고 얘기했으니까.
우리도 그런가 보다 했지. 인턴으로 근무했던 친구가 정직원이 안 되면서 억울해서 글을 올렸구나 생각했지.
조과장이 SNS에서는 가정적인 이미지잖아?
그래서 우리는 조과장 말을 믿었지. 정직원 채용을 미끼로 잠자리까지 했다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잖아? 아무리 입김이 쎄다고 해도 일개 사원이 어떻게 직원 채용에 관여하겠어? 조과장이 그런 말 했다고 잠자리를 갖는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근데 강유리대리랑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이정은대리가 자기도 조성기과장한테 그런 일을 겪었다고 글을 올리니까. 그때부터 흐름이 바뀌었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 그런 일 당했다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잖아. 앞으로도 계속 얼굴보고 근무해야 하는데. 회사 생활 내내 꼬리표가 따라 붙을거고. 본인이 비난 받을 것도 감수하고 얘기한 거니까. 용기가 대단한 거지.”
“아마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절대 얘기하지 못 했을거야. 대다수 사람이 그 상황에서 자기도 그런 일을 당했다고 얘기하지 못하지. 난 이정은대리랑 몇 번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대리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거든. 조용조용하고 대부분 듣는 편이라. 그렇게 용기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
민정씨는 이정은대리의 고백에 많이 놀랬다. 평소 강한 이미지의 강유리대리가 그렇게 밝혔으면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은대리는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기에 회사 사람들이 받은 충격과 파급효과는 컸다.
“결론적으로 이정은대리가 올린 글 때문에 조과장이 퇴사를 했잖아?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해. 분명히 조과장이 나쁜놈인데. 조과장이 퇴사를 한다고 하니까 좀 불쌍하게 느껴지더라고.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앞으로 취직도 어려울 거 아니야?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할텐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그냥 맘이 좀 짠하더라고. 특별히 조과장이랑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거나 얘기도 몇 마디 나눈적이 없는데. 회사 생활을 같이 하고 있는 동지라는 생각이 있었나봐.”
오빠는 조과장 때문에 괴로웠을 인턴이나 이정은대리는 안 불쌍해?
“불쌍하지. 안타깝고. 근데 조과장이 퇴사하니까 솔직히 이정은대리도 좋게 보이지는 않더라고.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야. 결국 이정은대리도 퇴사했어.”
“응, 들었어. 전라도에 있는 물류센터로 발령나서 거기서 일하다가 퇴사했다고.”
민정씨는 생각해 봤다. 만약 본사에서만 일했던 민정씨가 갑자기 지방에 있는 물류창고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회사에서 내리는 인사 발령은 일종의 명령이다.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려고 하면 인사 발령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 발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다. 갑작스런 그런 발령은 누가보더라도 회사를 그만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다.
一魚濁水(일어탁수) 한 마리 물고기가 물을 흐린다
민정씨는 생각했다. 일어탁수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강에 들어가면 물이 맑아 보인다. 부식물과 진흙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으로 바닥을 휘저으면 곧 물은 뿌옇게 변한다.
회사라는 조직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어도 굳이 그걸 들춰내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는 문제 제기를 하지만 누군가는 또 그대로 묻어버린다.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겉에서 볼 때 조직은 문제가 없어 보이고 굴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반복되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부식물과 진흙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누군가는 휘저어줘야 하고 부식물을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조성기과장과 이정은대리의 퇴사. 이정은대리 퇴사 후 회사 분위기는 또 바뀌었다.
자신을 희생하며 내부 고발을 한 그녀에 대한 동정론이 커졌고 물류센터로 발령낸 회사의 처사가 너무하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동안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만 있던 사우들이 하나 둘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일을 인사과에 제보했다. 인사과에서는 갑자기 몰려드는 제보에 빠르게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내용의 경중에 따라 처벌 수위를 결정하고 진행했다.
가장 많은 제보 내용은 ‘언어 성희롱’이었다. 무심코 사용하는 성차별적인 발언과 성희롱이 그 동안 회사에 만연했던 것이다. 회사 임원회의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인사과에 몰려든 제보 내용을 분석해서 처리방안을 논의했다.
얼마 후 대표이사 이름으로 회사 게시판에 사과문이 올라왔다.
회사에서는 대대적으로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다. 인사과 주관으로 본부 별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그 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이슈를 꺼내 개선해야 될 포인트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조직을 봉합해나갔다.
민정씨는 날씨가 좋은 어느 주말 강유리대리와 이정은대리를 강남역에서 만났다. 강유리대리가 이정은대리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거기에 민정씨를 초대한 것이다. 셋은 오랜만에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점심은 강유리대리가 계산했다. 선배인 민정씨가 점심을 산다고 했지만 강대리는 돈을 벌고 있는 자기가 사는 것이 맞다고 우겼다. 대신 커피는 민정씨가 샀다. 민정씨는 아메리카노, 강유리대리는 달달한 카페모카, 이정은대리는 카푸치노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편안하게 수다를 떨었다.
“정은아. 유리한테 얘기 들었어. 마음 고생이 많았겠네.”
민정씨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니에요 선배님. 그 당시 저도 선배님처럼 회사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때였어요. 그런 시기에 인턴 글이 올라와서 지른거죠 뭐. 만약 계속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했으면 그렇게 나서기 어려웠을 거에요.”
이정은대리는 웃으며 얘기했다. 민정씨는 이정은대리가 우울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은 없었다.
“정은이가 조용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깡이 있다니까요. 우리 팀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근데 다른 팀 사람들은 정은이가 조용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죠.”
강유리대리가 웃으며 얘기했다.
“아무튼 대단하다 정은아. 니 얘기 듣고 많이 놀랬어. 그나저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민정씨가 물었다.
“저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는 회사보다 공무원이 맞을 것 같아서요. 오랜만에 하는 공부인데 지금은 그럭저럭 할만해요. 나중에 공무원 되면 제가 맛있는 밥 살게요.”
이정은대리는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민정씨와 강유리대리는 이정은대리의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맛있는 밥을 사달라고 얘기했다. 민정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