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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주세용 Nov 21. 2022

그 정도면 충분하다

파리에 갔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급하게 숙소를 예약했다. 몇 주 전에 예약했다면 훨씬 싸게 예약할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 아까웠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방은 매우 좁았다. 침대 하나와 작은 책상, 몸이 겨우 들어가는 샤워실.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일회용 치약, 칫솔, 물이 없었다.


늦은 밤이라 편의점은 연 곳이 없었다. 호텔 카운터에 가서 얘기했다. "방에 치약, 칫솔, 물이 없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은 야간에 임시로 근무하는 청소부였다.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나?" 직원은 억울해했다. "그럼 누구한테 얘기하나?" 직원은 근처 Pharmacy에 가면 치약, 칫솔을 살 수 있다고 했다.


Pharmacy에 가보니 문은 닫혀 있고, 약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약사는 조그만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약을 내주고 있었다. 치약, 칫솔을 사기 위해 1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시 호텔에 들어가서 얘기하니 조금 비싸지만, 호텔에서 파는 게 있다고 했다.


일회용 치약, 칫솔이 5유로. 많은 주유소가 봉쇄되어 있었고, 그나마 연 주유소는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는 차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지하철은 파업으로 대기 시간이 길었고, 버스는 타고 가다 보면 시위 때문에 운행 불가라고 내리라고 했다.


심지어 날씨도 흐리고, 비가 자주 왔다. 센 강을 걷다 보면 보이는 쥐들과 살살 올라오는 찌릉내. 하지만 야간의 에펠탑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에펠탑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나도 그 틈에 끼어 모든 것을 잊고 에펠탑을 바라봤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에펠탑 #파리숙소 #여행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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