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민수씨는 고민정씨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던 때가 생각 나서 오랜만에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그는 우동 한 그릇과 소주 한병을 시켰다. 예전에는 우동 국물이 맛있었는데 최근에는 맛이 좀 변한 것 같았다. 칼칼한 맛이 없어지고 맹맹한 맛이었다.
우동을 반 정도 먹고 포장마차에서 일어났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원한 탄산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안에는 낯익은 알바생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제 꿈에서 본 편의점 알바생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 탄산수와 박카스를 들고 계산대에 섰다.
“이거 하나 마셔요. 저녁에 일하는 거 힘들죠? 저도 예전에 편의점에서 저녁 알바 오랫동안 했어요.”
그는 계산을 마치고 알바생에게 박카스를 하나 건네주며 얘기했다.
“아. 고맙습니다.”
알바생이 당황하며 박카스를 받았다.
민수씨도 예전에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때 그렇게 음료수를 건네주던 사람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근데 혹시 어제도 근무했어요?”
민수씨는 물었다.
“네. 어제도 근무했죠.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요. 요즘은 저 혼자 계속 일해요.”
알바생이 대답했다.
“그럼 혹시 어제 새벽에 젊은 사람 두명이 편의점 밖에서 라면이랑 삼각김밥 먹으면서 맥주 마신 거 기억해요?”
민수씨가 물었다.
“음. 아. 맞아요. 새벽 1시 넘어서 남자 두명이 그렇게 먹었어요. 어제는 손님도 거의 없었고 자주 들락날락 하면서 맥주를 사서 기억이 나요. 근데 왜 그러세요?”
“아. 별 거 아니에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민수씨는 혼란스러웠다.
어제 본 장면이 꿈이 아니고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의 아내가 남자와 전화통화를 한 것도 꿈이 아니라 진짜라는 건데. 그는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어제 전화통화를 할 때의 고민정씨의 목소리와 상대방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전화통화에서 상대방 남자는 금요일 오전에 동네로 온다고 했다. 민수씨는 다음 주 일정을 생각해 봤다. 화요일, 수요일은 강원도로 본부 워크샵을 가고 금요일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는 금요일에 연차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니 민정씨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오빠 어디갔다 왔어?”
그녀가 물었다.
“어. 잠깐 동네 산책하고 왔어.”
“그래? 저녁은 먹었어?”
“응. 우리 자주가던 포장마차에 가서 우동 한 그릇 먹었어.”
민수씨가 대답했다.
“아. 거기? 나도 최근에 거기 가서 먹었는데.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지 음식 맛이 영 아니더라구.”
“그치? 우동 국물이 너무 맹맹하더라. 주인이 바뀐 걸 몰랐네. 오늘 친구들은 잘 만났어?”
“응. 오늘 대학교 때 과 친구들 만났어. 오빠도 진희랑 신미 알지? 진희는 얼마 전 둘째 낳았다고 했잖아.”
민정씨가 얘기했다.
“아. 기억나. 신미씨는 호텔 다니는 친구 맞지?”
“응 맞어. 진희가 요즘 애 낳고 우울증 비슷한 거 걸렸거든. 오늘은 남편이 애 봐준다고 마음껏 놀다가 오라고 했대. 오랜만의 외출이라서 집에 빨리 들어가기 싫다고. 그래서 저녁식사까지 하고 간만에 근황토크 좀 하고 왔지.”
“응, 잘했네.”
민수씨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민정씨와 대화를 이어갔다.
보통 때와 다른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외도를 하고 있다? 민수씨는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바람을 피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머릿속에 맴도는 아내와 낯선 남자의 통화소리가 현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말이 지나고 평일에는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월요일에는 워크샵 발표 준비를 하며 팀원들과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했다. 화요일, 수요일은 강원도로 워크샵을 가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목요일에는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금요일.
그는 이미 회사에 연차를 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장 차림을 하고 넥타이를 맸다. 오른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이른 아침 출근을 한다고 집을 나서는 길. 민정씨는 잘 다녀오라고 하며 문 앞에서 그에게 뽀뽀를 했다. 평상시와 다름 없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그는 전날 미리 렌트해서 집 앞에 세워둔 차에 탔다. 썬팅이 진하게 되어 있어 안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그랜저였다. 그는 차를 아파트 현관 출입문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차했다. 라디오에서는 출근 길 교통상황에 대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이라 차가 막히지 않는 것 같았다. 평상시 금요일과 다를 게 없는 아침이었다.
그는 차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노량진에서 공부할 돈을 벌기 위해 1년 동안 알바를 했는데 그때 한달동안 일했던 택배 물류창고였다. 꿈속에서 그는 14톤 트럭에 가득 찬 택배를 내리고 있었다.
원래는 2인1조로 작업을 하는데 그는 혼자서 택배를 내리고 있었다. 택배는 빈 공간 없이 빽빽하게 트럭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택배 상자를 빼기가 어려웠다. 겨우 상자를 빼 내면 미끄러워서 잘 잡히지 않았다. 무겁기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뒤에서는 트럭 운전기사와 작업 반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시계를 보며 늦었으니 빨리 내리라고 재촉을 한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 졌다.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트럭 빈 공간에 다시 택배가 저절로 채워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택배가 채워지며 그는 택배에 둘려싸여 갇히고 말았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트럭안이 어두워지며 공기가 희박해졌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철컹’. 그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반복해서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리는 트럭 안의 가득한 택배 사이에 묻히고 말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통이 극심해지며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때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둘러보니 처음 보는 차 안에 앉아 있었고 눈앞으로 아파트 현관이 보였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차에 있는 시계를 봤다. 10:24. 두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다. 이미 민정씨가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꿈에서 택배물류 창고에서 일할 때 상황이 너무나 생생했다.
택배를 잡을 때 미끄러워 놓쳤을 때의 손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택배 물류창고에서 알바하고 있던 것이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곧 지금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는 현재가 더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택배 물류창고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지금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차에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차가운 바람이 차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귓속에서 무언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시원함을 느끼며 동시에 “삐삑” 소리가 들렸다.
“오늘 피곤해 보이네?”
민수씨는 목소리를 듣고 바로 아내 목소리 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제 촬영이 밤 늦게 끝났어. 중요한 장면이라서 몇 번 반복해서 찍었거든.”
“아. 그랬어? 그럼 잠 좀 깨게 커피 한잔 내려줄까?”
민정씨가 얘기했다.
“응 좋지. 이왕이면 아이스 커피로 해줘.”
남자가 얘기했다.
민수씨는 목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며칠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그 목소리. 홍준기.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준기. 그는 머리가 아팠다.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 있어줬던 친구. 자기가 인생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인 준기가 지금 자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고 싶었어. 너무너무.”
민정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보고 싶었어. 니가 보고 싶어서 연기도 잘 안 되더라고.”
민수씨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계속 들렸다. 대화를 들어보니 둘은 꽤 오랫동안 만남을 유지한 것 같았다. 다른 장소도 아닌 민수씨가 살고 있는 그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