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Hey Laura(최종회)

소설

by 봉봉주세용

김민수씨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아내 고민정.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만나면서 한번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녀 역시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는 친구인 홍준기를 생각했다. 노량진에 있는 학원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친구. 그 후 준기씨는 그가 노량진에서 생활할 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노량진에서 외롭고 힘들던 시절에 준기씨는 그의 얘기를 들어줬고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더 이상 차안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갈 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느 새 손은 주먹이 쥐어졌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은 적의로 차 있었지만 생각보다 차분한 얼굴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방 식탁에는 커피컵이 놓여 있었다.


잔 안에는 얼음이 남아 있었고 컵 주위로 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았다. 안방 문은 닫혀 있었고 방안에서는 핸드폰에서 울리는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아내의 신음소리와 격렬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그녀와 섹스를 할 때 그녀의 신음소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낯설었다. 그는 안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의 아내와 그의 친구는 알몸으로 몸이 뒤섞여 있었다. 친구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내는 친구 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채 몸을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가 문을 열었는데도 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젖가슴이 흔들리며 쾌락에 취해 움직이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봤다. 지금까지 그가 사랑했던, 지금까지 그가 알고있던, 불과 몇 시간전까지 그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그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 처럼. 그리고 곧 그녀는 더욱 빠르게 엉덩이를 움직이며 소리를 질렀다.


1초,

2초,

3초,

4초,

5초,

.

.

.


점점 속도를 높이던 엉덩이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멈췄다. 절정의 순간. 눈 앞의 모든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췄다. 마치 누군가 화면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고 민수씨는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민수씨의 눈을 보며 웃고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핸드폰에서는 그레고리 포터의 ‘Hey Laura’ 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Hey Laura, it's me.

로라, 나야.


Sorry but I had to ring your doorbell so late.

이렇게 늦은밤에 미안하지만 너희집에 왔어야 했어.


But there's something bothering me.

뭔가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


I really am sorry, but it just couldn't wait.

정말 미안하지만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었어.


Is there someone else instead of me?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안에 있니?


Go ahead and lie to me and I will believe.

그래 그럼 나한테 거짓말이라도 하면 난 믿을게.


You're not in love with him and this fool can see.

넌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바보같은 나는 볼 수 있을거야.


That the rivers of your love flow up hill to me.

너의 사랑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내게 오는 것을.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음악소리가 좋았다. 아내의 미소가 따뜻했다. 아내 아래 깔려 있는 그의 친구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아팠다. 갑자기 귓속에서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며 귀와 머리가 시원해 졌다.


“삐삑” 소리가 나며 아파트 아래 주차장에서 얘기하고 있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지지직” 소리가 나며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겹쳐져 들렸다.


“삐삑” 옆집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삐삑” 근처 초등학교에 있는 운동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들리는 장소가 바뀌며 목소리가 겹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소리가 들렸다. 앞에서 그의 아내가 웃으며 그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들어보려고 했지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물고기처럼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고 많은 소리가 그의 귀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뭐라고?” 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발디딜틈 없이 사람이 가득찬 떠들썩한 수산물 시장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번 외쳤다. “뭐라고?”. 그의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웃으며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김민수씨는 머리가 아파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 앉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한기가 느껴지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조금씩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작아지며 그레고리 포터의 ‘Hey Laura’ 의 애절한 후렴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Hey Laura it's me

로라 나야.


Hey Laura it's me

로라 나야.


Hey Laura it's me

로라 나야.


그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있던 홍준기씨가 천천을 몸을 일으켜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홍준기씨는 바닥에 앉아 몸을 떨며 울고있는 민수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민수씨는 친구의 손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준기씨는 민수씨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있다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쥐고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민수야. 일어나.”


준기씨가 얘기했다.


“응?”


“민수야. 정신차려.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으면 너 입 돌아가.”


준기씨는 민수씨의 어깨를 흔들며 얘기했다.


“추워. 너무 추워.”


민수씨가 속삭였다.


어느 새 눈물은 말라있었다.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에 스쳤다. 그는 감았던 눈을 작게 떠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어두웠고 그는 주택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계단 주변에는 누군가 방금 토한 것 같은 토사물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주황의 가로등 불빛이 그를 비치고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골목길은 눈이 녹지 않아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익숙한 골목길과 가로등 불빛. 분명히 와 본적이 있는 곳이었다. 민수씨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29살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매일 지나다니던 노량진 골목길. 새벽마다 학원에 갈 때 지나가던 그 길에 민수씨는 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민수야. 이제 정신 좀 드냐? 너 이제 술 적당히 마셔야겠다.”


옆에서 준기씨가 얘기했다.


“여기가 어디지?”


민수씨가 어리둥절해 하며 얘기했다.


어디긴 어디야. 노량진이지.


준기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노량진? 이상하네. 난 분명 집에 앉아 있었는데. 민정이는 어디갔어?”


“무슨 소리야. 민정이는 또 누구야. 니 여자친구는 새롬이잖아. 정새롬. 민정이라면 혹시 니네 학원 선생님 얘기하는 거 아니야? 아무튼 기억안나? 너 어제 술 마시면서 이제 경찰 공무원 시험 때려칠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렀잖아. 글라스 잔에 소주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에휴.”


준기씨가 민수씨의 등을 두드리며 얘기했다.


민수씨는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경찰공무원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듣고 친구인 준기씨와 술을 마셨다. 더 이상 경찰공무원 시험은 안 볼거라고 다짐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다.


친구인 준기씨는 그런 민수씨의 울분을 들어주며 함께 술을 마셨다. 문득 옆에 있는 친구 준기가 고맙게 느껴졌다. 민수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준기씨는 옆에서 그런 민수씨를 부축했다. 민수씨는 얘기했다.


“이제 괜찮아. 나 혼자 일어설 수 있을 거 같애.”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준기씨를 뒤로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민수씨는 생각했다.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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