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소설

by 봉봉주세용

어느 금요일 저녁.


김민수씨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곧 마무리 될 것 같았다.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회사는 큰 변화의 시기를 겪어야 하고 그 임팩트는 상당할 것이었다. 조직에서는 곧 나오게 될 결과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김민수씨를 시기하던 동료들도 이제는 그와 그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는 팀원들과 오랜만에 회식을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팀원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팀원들이 그 날을 회식 날짜로 잡았다. 회식은 회사 근처에 있는 일본식 퓨전 야끼니꾸 집에서 했다.


동그란 금빛 접시에 소고기가 부위별로 담겨있었고 마늘, 은행은 꼬치에 끼워져 있었다. 2개의 테이블에서 미니 화로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부채살부터 마늘, 우설, 황제늑간 등을 차례로 구워 와사비를 올려 먹기고 하고 소금에 살짝 찍어서 먹기도 했다. 고기는 입에 들어가면 씹을 새도 없이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술은 하우스 레드 와인으로 통일했다. 뜨거운 화로에 얼굴이 후끈거리며 취기가 빨리 올라왔다. 식당 조명은 은은했고 고기 맛은 일품이었다. 고기를 먹는 팀원들 얼굴은 어느 새 마시고 있는 레드와인 색과 비슷해졌고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민수씨는 오랜만에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갔다. 아내인 민정씨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이구. 오빠.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민정씨가 그의 자켓을 받으며 얘기했다. 차가운 공기와 술 냄새가 와락 풍겨왔다.


“사랑하는 내 아내. 고민정씨.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많이 마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오빠 방에 들어가서 자야지. 자. 들어가자.”


민정씨는 그를 부축해서 방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하지 않았다.


“민정아. 나 오늘은 이 상태로 여기서 잘게. 아무 것도 못 하겠어. 걱정하지 말고 방에 가서 자.”


민수씨가 간신히 얘기했다.


민정씨는 잠시 팔짱을 끼고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그리고 그가 잠 드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티비와 거실 불을 끄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 새 코를 골고 있었다.




민수씨는 이른 새벽 심한 갈증으로 잠에서 깨었다.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셨다. 단숨에 세잔을 내리 마셨는데 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회식을 할 때 초반에 와인을 마시다가 마지막에 맥주를 마셨는데 술이 섞여서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그는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반쯤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공기가 와락 그의 얼굴로 쏟아졌다. 그는 눈을 감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 순간 귓속에서 시원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의 분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병원에서 청각신경 비대증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멀리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적이 없었기에 그 능력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귓속이 시원해 지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시력도 함께 좋아진 것 같았다.


저 멀리 편의점이 보였다. 새벽이라 한가해 보였다. 편의점 안에는 손님이 없고 알바생이 계산대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편의점 밖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젊은 남자 두명이 마주 앉아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물 대신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식사를 한다기 보다는 술 안주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것 같았다. 그들은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잠시 편의점에 들러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하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잠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들은 취준생이었다. 최근 본 면접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민수씨는 예전에 취직 준비하던 때가 생각이 나서 그들의 대화를 재미있게 들었다.


그때였다. “삐삑” 취준생들의 대화 소리가 멀어지며 다시 주파수가 맞춰졌다. 이번에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아주 작은 소리로 전화에 대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손으로 입과 전화를 가린 채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다음 주 화요일은 어때? 그때 오빠가 워크샵 가거든.”


여자가 얘기했다.


“음. 월요일, 화요일은 내가 지방에 가야 하는데.”


상대방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그럼 금요일에 잠깐 볼래?”


여자가 얘기했다.


“잠깐만. 금요일 오전에는 괜찮을 거 같애. 그때 내가 니네 동네로 갈게.”


남자가 말했다.


“보고싶어.”


“나도 보고싶어. 근데 민수는 뭐해?”


남자가 얘기했다.




김민수씨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자기 이름이 나와서 놀랬다. 민수라는 이름이 또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대화를 들었다.


“아. 오빠는 지금 거실에서 자고 있어. 오늘 회식했는데 술을 많이 마셨나봐.”


여자가 대답했다.


민수씨는 머리가 아팠다. 지금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아내인 고민정씨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상대방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렇구나. 회사 생활하면 아무래도 스트레스 많이 받겠지.”

남자는 얘기했다.


민수씨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생각했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 이제 자야겠어. 빨리 다음 주가 왔으면 좋겠네. 그럼 그때 거기서 봐.”


전화가 끊겼다.


고민정씨는 목소리에 애교를 담아 얘기했다. 김민수씨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아내의 목소리였다. 민수씨는 어지러웠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누웠다.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볼을 꼬집었다.


볼이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상대방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분명히 익숙한 목소리인데 누구의 목소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 김민수씨는 정오가 다 되어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셨다. 그는 자켓만 벗은 채로 소파에 누워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시원한 물을 마셨다.


머리가 아팠다. 식탁에는 고민정씨의 메모와 간단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호박전, 마른 김, 그리고 구운 고등어가 놓여있었다.


[오빠. 굿모닝? 어제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취한 건 오랜만에 보네. 그래도 뭔가 기분좋게 취한 것 같았어. 오빠가 거실에서 자고 싶다고 해서 그냥 소파에서 자게 내버려뒀어. 잘했지? :) 난 수영 좀 다녀올게.


수영 갔다가 잠깐 대학교 때 친구들 만나고 올거야. 간단히 식사 준비해 뒀는데 찌개는 따뜻하게 데워먹어. 고등어는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사랑해. - 민정이가 ♥]


민수씨는 민정씨의 쪽지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김치찌개와 고등어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민수씨가 들었던 아내의 전화통화는 꿈이 확실했다. 이렇게 착한 민정씨가 그런 전화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민정씨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두툼하게 들어가 있어서 더 맛있었다. 밥은 한 그릇으로 양이 부족해 한 그릇 더 떠서 먹었다. 따끈따끈한 밥과 김치찌개가 잘 어울렸고 숙취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점심을 먹고 거실에서 영화를 봤다. 그가 좋아하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였다. 영화배우 더락이 나오는 영화는 언제봐도 화끈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 근육질의 더락은 신나게 악당을 때려부쉈다.


아무리 악당 수가 많아도 더락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무시무시한 팔뚝으로 한번 휘두르면 악당들은 모두 나가 떨어졌다. 영화를 보다가 민수씨는 다시 잠들었다. 일주일 동안 부족했던 잠의 빚을 갚기라도 하듯이. 그는 긴 시간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민수씨가 일어났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옆에 있는 핸드폰 배경화면에 고민정씨가 보낸 카톡 글이 보였다. 친구들과 간단히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저녁까지 먹고 들어 간다는 내용이었다.


민수씨는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는 출출함을 느꼈다. 저녁식사는 동네 산책을 하다가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랜만에 동네를 걸었다. 예전에 민정씨와 손을 잡고 퇴근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녀는 옆에서 쫑알쫑알 회사 얘기를 했다. 민수씨는 그런 민정씨의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걷다가 한번씩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간단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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