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속이 꽉 찬 남자는 만나기 쉽지 않다

소설

by 봉봉주세용

정수지부장은 수줍게 청첩장을 건네며 얘기했다.


“민수씨. 나 다음 달에 결혼해요. 두번째 결혼이라 사실 식을 안 올리려고 했는데. 남편되는 사람이 첫번째 결혼이라 간단하게라도 식을 올려야겠더라고. 그래서 조그맣게 식 올리려고 해요. 친한 친구 몇명이랑 가족, 친척만 초대하려고.


회사에는 청첩장 안 돌릴건데 민수씨한테는 부탁이 있어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할 건데 민수씨가 사회를 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가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료니까. 해 줄 수 있죠?”


“그럼요 부장님. 제가 친구들 결혼식 사회 많이 봤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흔쾌히 사회를 보겠다고 했다.


“고마워요 민수씨. 나 두번째 결혼인 거 알죠? 이번에는 잘 살아보려고.”


정부장이 얘기했다.


“잘 살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남편 분은 복이 많네요. 이렇게 이쁘고 능력있는 분이랑 결혼을 하다니.”


민수씨가 진심으로 얘기했다.


남편될 사람에게 질투가 느껴졌다. 이렇게 멋진 여자랑 결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민수씨와 정부장은 술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훠거를 먹으며 어느 새 술도 꽤 마셨기 때문이다.




“근데 남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 내가 결혼할 사람은 경찰이에요. 그냥 평범한 경찰.”


정부장이 웃으며 얘기했다.


“경찰이라. 잘 알죠 경찰.”


민수씨가 술을 한잔하며 얘기했다.


그는 그 평범한 경찰이 되기 위해 부산에서, 노량진에서 총 3년 동안 공부했다. 길을 가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경찰이 왜 그렇게 되기가 어렵던지. 예전에 공부할 때 생각이 나서 몸이 으스스해졌다. 치열했고 외로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최연소 팀장도 되고 나름 인정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득 정부장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멀리서 얘기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달콤한 능력이지만 혼자서만 알고 있다보니 가끔은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어졌다. 간절하게. 그는 정부장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했다.



“저는 부장님이 경찰 만나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결혼할 것이라는 것도요.”


“응?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들었어요. 휴게실에서 직원들이 얘기하는 게 들렸거든요. 저 얼마 전에 돌발성 난청으로 입원했었잖아요? 그게 완치된 후에 멀리서 얘기하는 게 들리거든요. 그런 능력이 갑자기 생겼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정말? 그런게 가능해요?”


“네.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대요. ‘청각신경 비대증’이라고 엔도르핀이랑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갑자기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몇 십배에서 몇 백배까지 향상되는 거래요. 처음에는 신기해서 멀리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 좀 듣다가 이제는 시시해서 안 듣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비밀을 얘기하며 후련함을 느꼈다.


“우와. 대단하구나. 그런 게 가능하다니. 돌발성 난청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그런 능력이 생긴다면 나도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에 좀 입원하고 싶네요.”


정부장은 민수씨가 얘기한 것을 믿었다.


“근데 들어보니 결혼하실 분이 키가 작다고 하던데. 맞아요?”


“응 맞아요. 키가 160 정도 되려나?”


“듣기로는 남편 되실 분이 부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다고 하던데. 부장님이 그 동안 만났던 남자들 보면 다들 화려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남자가 보기에도 멋있는 사람들이고. 너무 차이가 나는 거 아니에요?”


민수씨는 궁금했던 부분을 망설이지 않고 물어봤다.




“응. 민수씨도 알다시피 내가 이혼하고 많은 남자들을 만나봤잖아요. 다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멀쩡한데 실제로 만나보면 제대로 된 사람이 없더라고요. 어릴 때 부터 그렇게 자라서 그런건지. 자기가 최고고 자기 밖에 몰라요.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그냥 자기만 있는거지. 겉으로는 잘 포장되어 있어서 화려하게 보이는데 속은 텅 빈 상자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잘나가는 남자들 만날 때 마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속이 꽉 찬 남자는 만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민수씨는 정부장이 만나는 남자들이 그런 사람인 줄 생각도 못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성공한 위치에 있는 잘나가는 남자들로 보였으니까.


“아. 그럼 이번에 결혼하시는 분은 속이 꽉 찬 그런 분이신가 보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성인군자 같이 착하고 인격이 고매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대신 최소한 속빈 강정은 아니죠.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어떤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거에요?”


민수씨가 물었다.


정부장은 맥주잔을 들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곧 그녀는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잘해.”

그녀는 수줍게 대답했다.


“네?”

민수씨는 이해가 안 됐다. 뭘 잘한다는 거지?


“잘한다고. 그거.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한테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걸 그 사람이랑 할 때 느끼거든요. 거기에 빠진 거 같아요. 그거면 됐지 뭐.”


정부장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민수씨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으나 설명을 듣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정부장이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그는 그녀가 보여줬던 예비신랑의 얼굴이 떠 올랐다.


잘생기지도 특별히 잘나지도 않은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의 남자. 도저히 잘하는 것과는 연결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민수씨는 마지막 남은 맥주를 자기 잔에 따라서 한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잘 한다라. 잘 한다라. 도대체 얼마나 잘한다는 거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지부장은 강원도 속초에 있는 조그만 펜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창 유행하는 스몰웨딩이었는데 하객은 가족과 친지, 친한 친구 위주로 서른명 정도가 모였다. 그 중 십여명은 회사 동료들이었다. 정부장은 회사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는데 평소에 그녀를 따르던 후배 직원들이 축하해 주기 위해 속초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하객은 낮에 도착해서 삼삼오오 속초 바닷길을 산책했다. 정부장도 신랑과 이른 아침부터 펜션 주위와 바닷길을 산책하고 식장으로 돌아왔다. 펜션은 바닷가 쪽으로 잔디밭이 깔려 있었는데 테이블을 펴고 거기에 음식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시장에서 바로 잡아온 싱싱한 회와 각종 해산물이 깔렸다.


결혼식은 해가 질 즈음 시작했다. 일몰로 빨갛게 물들고 있는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정부장과 신랑이 입장했다. 사회를 본 민수씨는 유쾌한 분위기로 결혼식을 진행했다. 주례가 없는 대신 신랑 어머니와 정부장 아버지에게 덕담을 한마디씩 부탁했다.


신랑 어머니는 달변이었는데 경상도 억양으로 꽤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다. 말을 재미있게 해서 덕담을 하는 내내 하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장 아버지는 짧게 덕담을 하고 마무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내 딸 수지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정부장은 울음을 터뜨렸다. 바다에 간신히 걸려있는 해가 천천히 바다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정수지부장은 결혼하고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후 퇴사를 한다는 소문이 회사에 퍼졌다. 민수씨는 그 얘기를 듣고 정부장에게 메신저를 했다.


김민수: [똑똑. 정부장님. 퇴사하신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정수지: [헬로 김민수씨. 어제 퇴사한다고 팀장이랑 면담했는데. 소문이 참 빠르네.]


김민수: [알잖아요 부장님. 우리 회사 소문 빠른거. 근데 갑자기 왜 퇴사하시는 거에요?]


정수지: [나 임신했어. 내 나이가 40대 중반이라 사실 애 낳는 거 생각 안 했거든. 근데 덜컥 임신이 된거야. 병원에서는 노산이긴 한데 몸 관리를 잘 해서 괜찮을 거 같다고 얘기하더라고. 그래도 임신기간 동안 몸도, 마음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만두는 거야.]


김민수: [우와. 축하드려요. 결혼하신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좋은 소식이 생기네요.]


정수지: [그러게. 그렇게 됐어.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 당분간은 태교에 집중하려고. 지금까지 회사 다닌거면 일은 충분히 한 거니까. 좀 쉴 때도 됐지 뭐. 이쁜 아기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도록 빌어줘. 나는 애가 나올 때까지 착한 일 많이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지내려고.]


김민수: [그럴게요 부장님. 이쁜 아기 건강하게 출산하실 거에요. 나중에 제가 애기 옷 보내드릴게요.]


정수지: [그 동안 고마웠어 민수씨. 나중에 다시 봐. 나는 빠르면 다음 주 부터 회사에 못 나올거야.]


그 후 정수지부장은 자기를 똑 닮은 인형같이 예쁜 여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민수씨는 귀여운 아기 옷을 정부장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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