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돌발성 난청 완치 후 찾아온 청각신경 비대증

소설

by 봉봉주세용

김민수씨는 비밀 얘기를 들으며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비밀 얘기를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괴로웠다. 무엇보다 대화를 엿듣다 보면 일이나 일상 생활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차츰 멀리서 하는 얘기를 듣지 않게 되었다.


햇볕이 맑은 어느 날이었다.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문득 민수씨는 궁금해졌다. 멀리서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그는 직원들에게 먼저 회사에 들어가라고 하고 돌발성 난청이 처음 왔을 때 진료를 받았던 이비인후과에 갔다.


“혹시 돌발성 난청이 재발해서 오셨나요?”


배우 신구같이 생긴 50대 원장은 싱글싱글 웃으며 얘기했다.


환자에게 이렇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료를 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민수씨는 생각했다.


선생님 덕분에 돌발성 난청은 완치 되었습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민수씨는 대답했다.




돌발성 난청으로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의 빠른 판단과 스테로이드 주사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대학병원에서 들었다.


“아닙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바로 병원에 오신 것이 잘한 것이지요. 보통은 증상이 나타나고 몇일이 지나서 병원을 찾거든요. 그럼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서 안타까운 결과가 나오게 되는거죠.”


“근데 선생님. 돌발성 난청이 완치되고 나서 이상한 증상이 생겼습니다. 제 와이프한테 얘기해도 믿지 않는데요. 가끔 멀리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이게 가능한 건가요?”


민수씨는 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혹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나요?”


원장이 물었다.


“맞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심호흡을 할 때 그런 증상이 나타나요.”


민수씨는 놀라서 대답했다.


그건 ‘청각신경 비대증’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드문 경우지만 돌발성 난청 환자가 완치 후 그런 증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원장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민수씨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저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는 거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가 드물지만 유럽쪽에서는 ‘청각신경 비대증’ 증상 사례가 종종 보고됩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그 증상이 없어집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 저는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닌지 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민수씨의 말에 원장은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별 일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왜 그런 증상이 생기는 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리의 전달 과정을 알아야 된다고 했다.


소리는 공기를 타고 외이에 전달되어 고막을 진동시킨다.
고막의 진동은 3개의 청소골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은 달팽이관의 청각신경을 자극하여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그러면 뇌는 이 신호를 소리로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팽이관에 있는 청각신경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수십배에서 수백배까지 늘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청각신경이 비대해지는 원인은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의 비정상적인 분비 때문이라고 추정하는데 정확하게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청각 뿐 아니라 시각도 비정상적으로 좋아지는 사례도 관찰된다고 했다. 민수씨는 그제서야 관악산에서 멀리서 얘기하고 있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보였던 것이 이해되었다.


모르핀보다 800배가 넘는 효능이 있다는 엔도르핀. 고통을 억제한다는 엔도르핀과 신체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아드레날린의 비정상적인 분비가 결코 몸에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민수씨는 병원을 나서며 빨리 증상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는 자신의 증상과 병원에서 들었던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믿지 못할 것이고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몇달동안 그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서는 민정씨와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잠을 잤다. 그런 일상적인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며 청각신경 비대증에 대한 것을 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지부장이 김민수씨에 메신저로 대화를 걸었다.


정수지: [헬로 김팀장님. 오겡끼데스까?]


김민수: [와따시와 겡끼데스. 안녕하세요 정부장님. 왠일이신가요?]


정수지: [요즘 우리 너무 뜸했던 거 아닌가요?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김민수: [아뇨, 오늘 괜찮아요. 오랜만에 훠거나 먹으러 갈까요?]


정수지: [콜. 훠거좋죠. 그렴 강남역에 있는 훠거집으로 가요. 아. 나 곧 결혼해요. 이따 청첩장 줄게요.]


김민수: [드디어 가시는군요. 축하해요. 오늘은 축하 선물로 제가 저녁 살게요.]


정수지: [아니에요. 청첩장 주는 자린데. 내가 살게요. 아무튼 이따 끝나고 봐요.]


김민수씨는 평소보다 일을 일찍 마무리했다. 정수지부장과 저녁식사는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한번씩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민수씨가 팀장이 되고 나서는 한번도 그런 자리를 갖은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민수씨는 정부장과 얘기를 할 때마다 편안함을 느꼈다. 친구나 와이프에게도 하지 못하는 얘기를 정부장에게는 할 수 있었다. 워낙 입이 무거운 정부장이라 민수씨의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없었다. 정부장 역시 민수씨를 대할 때 친동생처럼 친근하게 대했고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약속시간에 훠거집에 도착하니 정부장은 이미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민수씨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자리로 이동했다. 정부장은 어두워진 강남 길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수 많은 회사원들이 바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정부장은 민수씨가 테이블에 앉자 정신을 차리고 반갑게 맞았다.


“아이구. 김팀장님. 바쁘실텐데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팀장은 할 만 하신가요?”


정부장이 웃으며 물었다.


“부장님. 너무 오랜만이네요. 아이구. 말도 마세요. 말만 팀장이지 완전히 노예에요. 팀원일 때는 내 일만 잘하면 됐는데. 팀장이 되니까 내 일은 내 일대로 해야 하고 팀원도 관리해야 하고. 저희 팀 아시잖아요. 저 보다 대부분이 선배라는 거. 일도 마음대로 못 시키고 오히려 제가 눈치본다니까요.”


민수씨는 청탕과 홍탕에 손으로 큼지막하게 야채를 잘라 넣으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팀장 일이 쉽지 않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팀장을 경험해 봐야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어요. 민수씨 아니더라도 팀장하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까. 그 자리에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알죠? 지치지 말고 힘내요.”


정부장은 최연소 팀장이 되어 잘 해나가고 있는 민수씨가 대견해 보였다.


그녀는 소주잔보다는 조금 크고 맥주잔 보다는 조금 작은 하얼빈비어 전용잔에 맥주를 따랐다. 대학교 때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그녀는 훠거를 좋아했다. 둘은 맥주를 한잔씩 하고 고기를 하나씩 건져내 훠거 전용 소스에 찍어먹었다.


민수씨는 뽀안 국물인 청탕에 양고기를 살짝 담갔다가 간장소스에 살짝 찍어 먹었고 정부장은 보기에도 매운 새빨간 홍탕에 쇠고기를 푹 익힌 후 땅콩소스에 찍어 먹었다. 원래 민수씨는 훠거를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장을 따라 한번씩 훠거를 먹다보니 그 특유의 맛을 알게 되었다.


특히 훠거와 함께 마시는 하얼빈비어는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둘은 고기를 후후 불며 빠른 속도로 먹었다. 어느 정도 고기를 먹었을 때 정부장은 청첩장을 꺼내 민수씨에게 내밀었다. 청첩장은 소박했지만 정성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청첩장을 싸고 있는 리본은 아마 정부장이 손으로 하나 하나 붙였을 것이라고 민수씨는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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