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명예퇴직 신청 공고

소설

by 봉봉주세용

강낫또씨는 최동민씨와의 만남 이후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든든한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가끔 팀원들과 얘기를 할 때 명예퇴직 소문에 대해 들은 게 없는 지 물었으나 다들 웃으며 강낫또씨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강낫또씨 팀장은 회사 역사상 명예퇴직을 시행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며 걱정하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라고 얘기했다.


며칠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회사 분위기가 이상했다.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강낫또씨의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어수선해요?


강낫또씨가 팀장에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어. 강과장. 이게 무슨 일이래. 인트라넷에 명예퇴직 신청자 받는다는 공지가 떴어. 근데 신청 마감기한이 딱 일주일이야.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강낫또씨는 팀장 옆으로 가서 명예퇴직 신청 공지를 훑어봤다.


연차에 상관없이 전 사원이 신청할 수 있고
6개월 치 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


친구인 동민씨가 얘기했던 입사 5년 차 이상, 15개월 급여 지급보다 훨씬 나쁜 조건이었다. 동민씨가 명예퇴직 조건을 얘기했을 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어디 있냐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더 암울했다.


온종일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갑작스러운 명예퇴직 공지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낫또씨도 답답했다. 하지만 누구도 명예퇴직 공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강낫또씨는 동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민아. 네가 얘기한 대로 명예퇴직 공지 떴다.”


“진짜? 나도 설마 했는데. 너희 회사 상황이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그러게. 이렇게 갑자기 공지가 뜰 줄은 몰랐어. 네가 얘기했던 명예퇴직 조건보다 훨씬 안 좋아. 신청 기간은 일주일이고 6개월 치 급여 지급한대. 이게 말이 되냐?”


강낫또씨는 답답해 하며 얘기했다.


"야. 흥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내가 볼 때는 6개월 치 급여 주는 것도 많이 주는 거야. 그렇게 급박하게 명예퇴직을 받는다는 건 정리해고까지 갈 수도 있다는 얘기야.


“설마. 대기업인데 정리해고까지 갈까. 좀 버티면 나아지지 않을까?”


“음. 나라면 명예퇴직 신청할 거야. 어차피 회사가 니 인생을 평생 책임져 주지는 않아. 언제까지나 월급을 받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야.


언젠가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가 오는 거야.


지금까지 월급 받으면서 회사생활 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


“그렇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암튼 고맙다.”


“그려.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나야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정황상 너희 회사가 무지하게 어려운 상황인 건 맞는 거 같네.”


동민씨와 통화를 마치고 강낫또씨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동민씨가 얘기한 대로 언제까지 월급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 시기가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강낫또씨 팀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자리에 앉아 시계만 보며 회의에서 돌아올 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 팀장은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팀장의 표정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깜짝이야! 아직 퇴근 안 했어?”


팀장은 사무실에 들어오다가 남아있는 10여 명의 팀원을 보고 놀란 듯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퇴근을 해요. 회의에서 윗분들은 뭐래요?”


팀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낫또씨가 대표로 물었다.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이렇게까지 안 좋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숫자를 까보니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 만으로도 용한 거더라고.


지난 해 부터 이어져 온 누적 적자가 너무 커져서 오늘 당장 파산 선언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야.”


팀장은 들고 있던 업무 노트를 힘없이 책상에 내려 놓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근데 왜 그걸 저희는 몰랐어요? 이렇게 회사 상황이 심각한데. 갑자기 나빠진 건 아닐 거 아니에요?”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최선길 대리가 따지듯이 물었다.


“글쎄.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윗선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는데 결국 잘 안됐다고 하더라고.”


“말도 안 돼요, 팀장님. 우리 회사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이라는 곳인데. 재무지표가 그렇게 안 좋았으면 사전에 구성원과 공유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갑자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발표를 하면 저희는 뭐가 되는 거에요? 위에서는 손 써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라고 얘기하면 끝인가요?"


최선길 대리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팀원들은 그런 최대리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얼마나 회사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최대리.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목소리로 사과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팀장이 나간 사무실은 최대리의 흐느낌과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팀원들은 그 적막함에 한 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