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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석촌호수 달리기

달리기 편

by 봉봉주세용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석촌호수에 가면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달리기하는 사람도 있고 걷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동호회에서 단체 티를 맞춰 입고 달리기를 하는 팀도 있고 한국체대 운동복을 입고 달리기를 하는 선수도 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아주머니, 경보처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저녁 시간에 석촌호수에서 운동을 한다.


석촌호수는 우레탄 바닥이라 달리기를 하다 보면 뒤에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잘 들린다.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듯이 달리기를 할 때 나는 발소리도 다르다. 나는 발소리를 듣고 그 사람이 어떻게 달리는지, 달리기 경력이 얼마나 됐는지, 얼마나 잘 달리는지를 유추해 본다.


나처럼 오랜만에 달리기하는 사람은 발소리가 무겁고 소리 간격이 길다. “쿵-쿵-쿵-쿵”


어느 정도 꾸준히 달리기를 한 사람의 발소리는 가볍고 리듬감이 있다. “탁-탁-탁-탁”


가끔 한국체대 학생이 짝을 지어 달리기할 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발소리가 들리나 싶으면 어느 순간 스쳐서 앞질러 간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그 친구들이 또 “타다다닥” 발소리를 내며 빠르게 앞질러 간다. 한 바퀴 돌고 또 한 바퀴를 앞질러 가는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하는 저녁 시간에 자주 마주치는 분들이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는 키가 큰 여성과 키가 작은 여성이다. 항상 그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달리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나를 스쳐 앞질러 간다. 오랜 시간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설정해 둔 골인 지점 500미터 앞에서부터는 나도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두 사람을 앞지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때를 제외하고 내가 그 두 사람을 앞질러 가는 일은 없었다. 그분들과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동지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 달리기를 할 때 그분들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허전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다가 어느 정도 몸무게가 줄면 달리기를 멈추고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한참 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동네 주변을 걷거나 한강에 가서 걷기를 했지만 퇴근 후 석촌호수에 가지 않은 시간이 꽤 길어졌다. 시간이 흘러 다시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퇴근 후 석촌호수에 갔다.


카페 고고스 앞에 있는 석촌호수 입구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고 뒤돌아봤는데 달리기를 할 때 자주 마주치던 키가 크고 키가 작은 여성 두 사람이 뛰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봤지만 마치 어제 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분들은 내가 쉴 때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예전보다 발소리가 가벼웠고 리듬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더 빨라진 것이다. 그분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분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쿵-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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