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편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동네 형들과 계곡에 물놀이를 하러 갔다.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30분 거리에 돈내코라는 곳이 있는데 물이 맑고 차갑기로 유명한 곳이다. 돈내코 상류에 원앙폭포가 있는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고 물이 깊어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했다.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헤엄을 쳤기 때문에 깊은 물에서 노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몸이 물에 가라앉았다. 물에서 나오려고 해도 더 깊이 빨려 들어갈 뿐. 당황하여 허우적대다가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위쪽에서 다이빙을 준비하던 형 한 명이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주었다.
나중에 그 형에게 물어보니 내가 물에 빠져 있었던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후 헤엄을 치러 바다나 계곡에 갈 수 없었다. 물에 빠졌을 때 느꼈던 공포감이 컸고 물에 들어갔을 때 발이 닿지 않으면 물 밑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영국으로 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는데 퇴근 후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 등록하고 러닝머신에서 걷기를 하고 있는데 지하에 있는 수영장이 보였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수영하는 이들이 그대로 보였다. 문득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 다음 날에는 퇴근하고 수영장으로 입장했다. 어린이 전용 풀과 일반 풀이 있었는데 일반 풀은 8개의 레인에 길이가 25미터였다. 보통 2-3개 레인에서는 선수들이 훈련했고 초보자는 끝에 있는 레인 1-2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오른쪽 끝에 있는 1번 레인을 이용했는데 주로 어르신들이 수영을 하는 곳이었다.
수영을 시작한 첫날 나는 25미터를 끝까지 갈 수 없었다. 어릴 적 바다에서 헤엄을 쳤지만, 수영은 아니었다. 헤엄은 물에 뜨기 위해 허우적대는 것에 가까운 것이라면 수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옆에서 자유형으로 수영하는 사람을 보면서 몇 번 따라 해 보았지만 숨이 차서 1/3도 갈 수 없었다. 함께 레인을 쓰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 때문에 정체되어 멈추는 것이 반복되자 미안해서 물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자유형 수영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얼굴이 물에 잠겼을 때 코로 천천히 숨을 내쉬고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때 재빠르게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들이쉬라고 했다.
일명 “음파 호흡법”.
그렇게 호흡법, 손으로 물 잡는 법, 발차기 등을 동영상을 보며 머리속에 넣고 수영장에 가서 직접 해 보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수영장에 갈 때마다 마주치던 할머니가 있었다. 빨강 수영복에 빨강 수모를 착용하는 덩치 큰 할머니였는데 나를 보면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물안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물 밖에 둔 채 평영으로 25미터를 왕복했는데 소금쟁이가 수면에서 미끄러지는 것 처럼 여유있게 이동했다. 한 번씩 자유형으로 수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역시 몸에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나는 25미터 가는 것도 힘들었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숨이 찼고 숨을 더 쉬려고 하니 허둥지둥하면서 자세가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 팔 돌리기도 안 됐고 발차기 역시 엉망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는 25미터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세는 엉망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