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영 1000미터 / 라이프가드

수영 편

by 봉봉주세용

영국에서 수영을 시작할 때 쉬지 않고 1000미터 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 정도면 최소한 물에 빠졌을 때 수영을 해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영에 재미를 붙이면서 한번에 수영을 할 수 있는 거리는 늘었지만 500미터 이상 가지는 못했다.


쉬지 않고 1000미터를 수영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다.


누군가 블로그에 1000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한 날 기분을 자세히 쓴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을 한번씩 읽으며 내가 1000미터 수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꽤 먼 거리를 수영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수영을 하고, 이렇게 반복하면 1000미터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에 1000미터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아직 1000미터를 갈 수 없는 체력인가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빨간 수영복 할머니는 편안하게 수영장 끝과 긑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할머니는 쉬지 않고 1000미터 이상을 수영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수영과 내 수영이 뭐가 다른지 생각해 봤다.


차이점은 몸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느냐 였다.


할머니는 힘을 빼고 수영하는데 나는 수영할 때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물잡기를 할 때 물을 세게 잡고 발차기를 할 때 힘차게 찼다. 단거리 수영을 할 때는 맞지만 장거리 수영을 할 때는 좀 더 힘을 빼야 하는 것이다. 힘을 빼기 위해 발차기 횟수를 1/2로 줄였다. 호흡을 할 때 좀 더 살살 하려고 했다. 물잡기를 할 때는 좀 더 유연하게 하려고 했다.


물고기가 물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물의 저항을 줄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했다.


수영을 시작하고 8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수영을 하는데 500미터를 앞두고 한번 더 턴을 하자고 생각했다. 보통 때 같으면 숨이 차고 어깨가 무거워 팔 돌리기가 잘 안 됐을텐데 그날은 괜찮았다. 525미터를 가고 한번 더 턴을 했다. 550미터.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고 출발했을 때 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575미터

600미터

625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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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미터

975미터

1000미터!


25미터 레인 20회를 왕복하면 1000미터가 된다. 그날 나는 한번에 20회를 왕복했는데도 힘들지 않았고 숨도 차지 않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서 수영을 더 하고 싶었다. 500미터를 더 수영했는데도 여전히 몸이 가벼웠고 끝없이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100도 라는 임계점을 넘겨야 하는데 나에게는 500미터가 임계점이었던 것 같다. 500미터까지 수영을 할 때는 괴롭고 힘들지만 500미터가 넘어가면 수영이 쉬워지는 것이었다. 그 동안은 그 500미터까지 가기 전에 수영을 멈췄는데 그날 500미터를 한번 넘고 1000미터까지 수영을 하고 난 후로는 수영이 쉬워졌다. 500미터 이후로는 1000미터, 1500미터, 2000미터 역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할 때 언제가 임계점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임계점까지 가는데 답답하고 지루하고 그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답답하고 지루한 그 순간이 임계점 바로 직전 일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임계점을 넘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는 것.


수영 1000미터를 하며 몸으로 배운 것은 그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적십자에서 주관하는 라이프가드 교육을 신청했다. 교육생이 30명 정도 있었는데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체육학과 학생들이었고 나만 29살이었다. 교육을 진행했던 선생님께서 직장 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텐데 왜 교육을 받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라고 대답했다.


하루 종일 물에 들어가 수영하고 또 수영했다.


그런 생활을 일주일 정도 하면서 심폐소생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받았다. 라이프 가드 교육 때 특히 기억에 남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잡혔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절대 힘으로 맞서려고 하면 안된다. 잡혔을 때는 바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손으로 물을 올려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수면에서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잡고 있는 사람이 겁을 먹으며 힘을 푼다. 그리고 잡고 있던 사람을 누르며 수면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 순간 힘차게 뿌리치며 빠져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물에 빠진 사람 뒤로 돌아가서 구조를 하면 된다.


두번째는 바다에서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이안류는 역조류라고도 하는데 해운대 해수욕장이나 제주 중문해수욕장 등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안류는 파도가 해변을 강하게 쳐서 순식간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물속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바다 쪽으로 끌어당기는 해류의 힘이 세서 아무리 육지 쪽으로 수영을 해도 빠져나올 수 없다. 특히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이안류에서 빠져나오려고 수영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힘이 빠져 물에 빠지게 된다.


바다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몸이 물에 뜨는데 이안류에 빠졌을 때는 그대로 머리를 수면 위에 두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이안류는 좁은 지역에서 짧게 발생하기 때문에 몸에 힘을 빼고 이안류 지역을 벗어나길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해류가 약해지면 그때 평행하게 수영을 해서 빠져 나오면 된다.


라이프가드 교육을 통해 물에서 타인을 구조하는 방법과 내 안전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 마지막 날 20미터 잠영, 4분 입영(손을 위로 들고 발로만 뜨는 것), 5미터 풀에서 바닥에 있는 웨이트 들고 20미터 끌기 등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라이프가드가 되었다.


* 라이프가드는 3년마다 재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갱신해야 한다. 올해 초(2018년) 2번째 갱신을 했는데 재교육을 받는 사람들 중 30대 중반인 내가 어린 축에 속했다. 50대는 물론 60대 아저씨도 재교육을 받는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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